HD현대중공업 (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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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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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설립된 조선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공업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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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73년에 설립된 조선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공업 업체.
연원 및 변천

현대중공업은 현대건설 조선사업부를 모태로 하여 1973년에 설립하였다. 1970년대 초반은 정부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끝나고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정부는 1972년부터 1976년까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고도성장 및 중화학공업화를 목표로 세웠다. 그 중에서도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현대건설은 조선소 건설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기 위하여 1970년 3월 조선사업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1971년 9월에는 영국 애플도어(A&P Appledore)사 및 스코트리스고우 조선소와 기술 및 판매 협조 계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1972년 2월 그리스 리바노스(Livanos)사와 26만 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 2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맺었으며, 3월부터 본격적으로 울산조선소 건설공사에 착수하였다. 1973년 12월에는 정식으로 현대조선중공업주식회사를 설립, 초대 대표이사로는 정주영 회장이 선임되었다. 1974년 6월 조선소 1단계공사인 1 · 2도크를 완공하였고, 11월에는 리바노스사에 26만 톤급 원유운반선 1호선을 인도하고 나서 곧바로 수출 1억불탑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75년 4월에는 수리 전문 조선소인 현대미포조선소를 세웠다. 1978년 2월에는 조선뿐만 아니라 해양 · 플랜트, 엔진기계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하여 ‘조선’이란 이름을 빼고 ‘현대중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79년 2월에는 국내 최초로 2만 6,000톤급 컨테이너선 건조하였다.

1980년 4월 한국형 구축함 1호를 진수하고, 5월에는 국내 최초로 자동차운반선을 건조해 인도하였다. 1982년 5월에는 정주영 회장의 6남인 정몽준이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로 취임하였으며, 1987년에는 회장이 되었다. 1980년대에 와서 현대중공업은 업종상 연관이 많은 각종 회사들을 흡수 · 합병하였다. 즉 1981년에 현대특수화학을, 1985년에 현대해양개발을, 1986년 현대종합제철을, 1989년 현대엔진공업을 합병하면서 기업이 크게 양적 팽창을 하였다.

1991년 4월에는 잠수함 전문화업체로 선정되어 잠수함 건조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었다. 1993년에는 다시 현대철탑산업 · 현대로봇산업 · 현대중전기 · 현대중장비산업 등을 각각 합병하여 사업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더욱 업종이 전문화되었다. 그리고 1995년 5월에는 국내 최초로 수직 굴착용 특수 굴삭기를 개발하였으며, 세계 제조업체 최초로 베트남에 가스파이프라인을 준공하였다. 1996년에는 세계 최대인 5,551TEU급 컨테이너선을 현대상선(현 HMM)에 인도하였다. 1999년 2월에는 노르웨이 FOLT사에서 수주한 15만 톤급 유조선을 세계 최초 쌍축으로 건조하였고, 해외 최초로 나이지리아 보니가스 트란스포트사로부터 13만 8천㎥급 LNG선 2척을 수주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주식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으며, 12월에 수출 30억불탑을 수상하였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현대그룹은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경영권 다툼이 일어나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인 정몽헌 회장이 현대그룹을 계승하였고, 2남인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끌고 계열 분리를 하였다. 그리고 2001년 3월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타계하고 나서 또한 각 계열사들이 다시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되었다. 2002년 2월에 현대중공업은 계열사였던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재출범하면서, 6남인 정몽준 회장이 최대주주로 경영권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삼호중공업을 인수했다. 2003년 8월에는 세계 최대 260MW급 디젤발전설비를 말레이시아로부터 수주하였으며, 2004년 9월에는 국내 최대 차세대 구축함 ‘문무대왕함’을 인도하였다. 그리고 2007년 5월에는 한국 최초 7,000톤급 이지스구축함(KDX-Ⅲ) ‘세종대왕함’을, 2008년 6월에는 국내 최대 1,800톤급 잠수함(KSS-Ⅱ) ‘안중근함’을 진수하였다. 2009년에는 세계 최초로 선박 생산 누계 9,000만 마력을 달성하여, 현대중공업 설립 30년 만에 대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2003년 수출 50억불탑과 2007년 수출 100억불탑에 이어, 2009년에 수출 150억불탑을 수상하는 등 2000년대에 들어와서 현대중공업은 조선사업 분야에서 크게 약진을 하였다.

2010년 4월에는 군산조선소와 풍력발전기 공장을 준공하였다. 2011년 2월에는 2월 세계 최초로 선박 1천 700척을 인도했고, 6월에는 역시 세계 최초로 LNG-FSRU를 수주하였으며, 8월에는 세계 최대 19만 톤급 쇄빙상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2012년 5월 세계 최고 효율의 SE태양전지를 개발하고, 9월에는 세 번째 이지스함인 ‘서애 류성룡함’을 인도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 반잠수식 운반선을 진수하였으며, 사우디 제다 발전소 공사를 32억불에 수주하였다. 2014년 2월 세계 최초로 ‘바다 위 LNG 기지’ 건조에 성공했으며, 2015년 7월에는 세계 최초로 1억 5,000만 마력의 대형엔진을 생산하였다. 2016년 6월에는 높이 121m의 세계 최대 증류탑을 선적하였고, 7월에는 세계 최고 효율 ‘가스처리시스템’ 장착한 LNG선(2733호선)을 인도하였다. 또한 같은 해 12월에 그린에너지사업본부를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로 설립하여 독립시켰으며, 동시에 현대글로벌서비스㈜를 출범하였다.

이처럼 현대중공업은 조선사업을 통해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해양 · 플랜트, 엔진기계 사업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종합중공업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사업 분야는 크게 조선과 해양, 전기와 전자, 건설장비, 로봇, 서비스, 그린에너지 등 6개 부문이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과 대형엔진에서는 세계 1위의 실적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선도기업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7년 초 부문별로 분사를 단행하였다. 즉 조선과 해양 부문은 현대중공업, 전기와 전자 부문은 현대일렉트릭&에너지시스템, 건설장비 부문은 현대건설기계, 로봇 부문은 현대로보틱스, 서비스 부문은 현대글로벌서비스, 그린에너지 부문은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 등 6개 독립법인으로 분사하였다.

2019년 3월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과 함께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를 위한 본계약 체결을 완료하였다.

2023년 3월 '제4기 정기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쳐 사명을 HD현대중공업으로 변경하였다. 새 사명은 의결 당일부터 바로 적용되었다.

현황

현대중공업은 2016년 말 기준 매출 39조 3,173억 원, 영업이익 1조 6,419억 원을 기록하였다. 2015년 대비 매출은 46조 2,317억 원에서 소폭 줄어들었지만, 영업이익은 1조 5,401억 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매출이 줄어든 것은 조선업계 불황 때문이지만, 흑자로 돌아선 것은 터보기계 · 그린에너지 등을 분사하는 등 지속적인 경영합리화를 단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현대건설 60년사』(현대건설, 2008)
『2017년 한국기업연감』(매경출판사, 2017)
HD현대중공업(www.hh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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