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문원(聞遠), 호는 희암(希菴). 천안 출신. 현석린(玄碩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구손(玄龜孫)이고, 아버지는 현숙(玄璹)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1590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광해군의 동궁기사관(東宮記事官)으로 시위(侍衛)하다가 몰래 창기(娼妓)와 잤다고 하여 승문원저작에서 파직되기도 하였으나, 전공(戰功)으로 여러 곳의 수령을 지냈다.
1606년 북평사(北評事)로 있을 때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가 다음해 울산판관을 거쳐, 지평에 이르렀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실정함을 보고는 벼슬을 버리고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저서로는 『희암유고』 4권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