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내원사 성월을 은사로 득도하고 운봉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1944년 8월, 산골짜기에서 일어난 돌풍이 문짝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곧 운봉선사를 찾아가자 베고 있던 목침을 가리키며 “한마디 일러보라.”고 하였다. 즉시 목침을 발로 차버리자, “다시 한번 일러라.”고 하였다. “천마디 말, 만마디 이야기가 모두 꿈 속에 꿈을 설함이니 모든 불조(佛祖)가 나를 속인 것입니다.” 하자, 경허(鏡虛)―혜월(慧月)―운봉으로 이어져 내려온 법맥과 함께 전법게(傳法偈)를 주었다.
“서쪽에서 온 불법, 흔적 없는 참 진리는 전할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나니, 받고 전할 것 없는 이치를 떠나버리면 해와 달은 같이 가지를 않는 것이니라(西來無文印 無傳亦無受 若離無傳受 烏兎不同行).”
그 뒤 운봉선사의 곁을 떠나 수행하였고, 1947년 문경봉암사(鳳巖寺)에서 정진을 할 때 한 도반이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면, 지금 바로 산 사람을 볼 것이요, 또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면, 지금 바로 죽은 사람을 볼 것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바로 무심삼매(無心三昧)에 들어가 21일 동안 침식을 잊고 정진하다가 홀연히 자기의 양쪽 손을 발견하자마자, 활연대오(豁然大悟)하고 오도송을 지었다.
“홀연히 두 손을 보고 전체가 드러났네. 삼세의 불조들은 눈 속의 헛꽃일세, 천경과 만론들은 이 무슨 물건인가. 이를 좇아 부처와 조사가 목숨을 잃었구나(忽見兩手全體活 三世佛祖眼中花 千經萬話是何物 從此佛祖總喪身).”
그 뒤 월내에 묘관음사(妙觀音寺)를 창건하고 선원(禪院)을 열어 후학들을 지도하는 한편, 조계산 선암사, 경주 불국사, 팔공산 동화사의 조실 및 선학원장(禪學院長)을 역임하였다. 후학들을 가르칠 때는 스스로에게 하나의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있어 면전에 출입하고 있음을 강조하였고, 부처를 절대자로 생각하지 말 것과 부처에 대한 관념을 버리지 못하면 부처 또한 스스로를 얽어매는 쇠사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우쳤다.
1967년 하안거(夏安居)를 마칠 때 선문답을 통하여 진제선사(眞際禪師)를 법제자로 삼았고, 월내 묘관음사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78년 12월 15일 해운정사(海雲精舍)에서 열반게(涅槃偈)를 지었고, 12월 18일 나이 66세, 법랍 50세로 입적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고승평전』(김정휴, 홍법원, 1982)
-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홍법원,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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