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김씨(金氏). 속명은 진탁(震鐸). 법호는 향곡(香谷). 경상북도 영일군 출신. 아버지는 원묵(元默), 어머니는 김적정행(金寂靜行)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절에 가기를 좋아하였으며, 16세 때 둘째형을 따라 천성산 내원사(內院寺)로 입산하여 1929년성월선사(性月禪師)를 은사로 삼아 득도하였다. 1931년 범어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내원사 조실(祖室)로 있던 운봉선사(雲峰禪師)를 시봉하며 10여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용맹정진하였다.
1944년 8월, 산골짜기에서 일어난 돌풍이 문짝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곧 운봉선사를 찾아가자 베고 있던 목침을 가리키며 “한마디 일러보라.”고 하였다. 즉시 목침을 발로 차버리자, “다시 한번 일러라.”고 하였다. “천마디 말, 만마디 이야기가 모두 꿈 속에 꿈을 설함이니 모든 불조(佛祖)가 나를 속인 것입니다.” 하자, 경허(鏡虛)―혜월(慧月)―운봉으로 이어져 내려온 법맥과 함께 전법게(傳法偈)를 주었다.
“서쪽에서 온 불법, 흔적 없는 참 진리는 전할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나니, 받고 전할 것 없는 이치를 떠나버리면 해와 달은 같이 가지를 않는 것이니라(西來無文印 無傳亦無受 若離無傳受 烏兎不同行).”
그 뒤 운봉선사의 곁을 떠나 수행하였고, 1947년 문경봉암사(鳳巖寺)에서 정진을 할 때 한 도반이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면, 지금 바로 산 사람을 볼 것이요, 또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면, 지금 바로 죽은 사람을 볼 것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바로 무심삼매(無心三昧)에 들어가 21일 동안 침식을 잊고 정진하다가 홀연히 자기의 양쪽 손을 발견하자마자, 활연대오(豁然大悟)하고 오도송을 지었다.
“홀연히 두 손을 보고 전체가 드러났네. 삼세의 불조들은 눈 속의 헛꽃일세, 천경과 만론들은 이 무슨 물건인가. 이를 좇아 부처와 조사가 목숨을 잃었구나(忽見兩手全體活 三世佛祖眼中花 千經萬話是何物 從此佛祖總喪身).”
그 뒤 월내에 묘관음사(妙觀音寺)를 창건하고 선원(禪院)을 열어 후학들을 지도하는 한편, 조계산 선암사, 경주 불국사, 팔공산 동화사의 조실 및 선학원장(禪學院長)을 역임하였다. 후학들을 가르칠 때는 스스로에게 하나의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있어 면전에 출입하고 있음을 강조하였고, 부처를 절대자로 생각하지 말 것과 부처에 대한 관념을 버리지 못하면 부처 또한 스스로를 얽어매는 쇠사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우쳤다.
1967년 하안거(夏安居)를 마칠 때 선문답을 통하여 진제선사(眞際禪師)를 법제자로 삼았고, 월내 묘관음사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78년 12월 15일 해운정사(海雲精舍)에서 열반게(涅槃偈)를 지었고, 12월 18일 나이 66세, 법랍 50세로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