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3년에 이조판서 이식(李植)은 왕명으로 적상산성을 순찰하고, 병자호란으로 수군(守軍)과 승병이 모두 흩어져서 산성과 사고(史庫)의 수호가 허술함을 인조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왕은 1645년(인조 23)에 적상산사고의 수호사찰로서 이 절을 창건하게 하였다. 당시의 전라감사 윤명은(尹鳴殷)은 봉급과 사재를 희사하였고, 승통(僧統) 각명(覺明)이 사역을 담당하였으며, 현감 심헌(沈憲)이 감독하였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1949년 여수 · 순천 사건 때 전소된 뒤 현재 산신각과 요사채를 같이 사용하는 불당 1동만이 있다.
유물로는 적상산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적상산성 호국사비가 있으며, 적상산성 호국사비는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절 밑쪽에는 1717년(숙종 43)에 건립한 청운당사리탑(淸雲堂舍利塔)과 봉공탑(奉供塔), 1750년(영조 26)에 건립한 월인당영골탑(月印堂靈骨塔), 1753년에 건립한 보운당사정탑(寶雲堂思政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