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수가 일정하지 않은 잡체시이며, 이석형의 문집 『저헌집(樗軒集)』과 『동문선』에 수록되어 전한다.
조선왕조가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수도 서울 건설공사에 수많은 백성이 동원되어 고생하는 모습을 다루었다.
나무나 돌을 여럿이 운반하면서 내는 소리인 ‘호야 호야’ 또는 ‘이영차 이영차’ 하는 말로 제목을 삼았다. 삼각산의 돌을 거의 뽑아내고, 백운대의 나무를 다 찍어내느라고 애쓰면서 병졸들의 독촉 때문에 더욱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끼니를 굶고 허리에는 빈 자루만 찼기에 외치는 소리에 침이 마른다고 하였으며, 큰 재목은 산에 두지 말고 임금 곁에 두어서 애절한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하였다. 한시이지만 일꾼들이 실제로 부른 노래에 가깝게 하려고 일정한 격식을 따르지 않았다. 한시가 일찍부터 민요에 접근한 예로서 주목된다. 새 도읍의 위용을 노래하기 보다는 궁궐 공사에 동원되어 나무와 돌을 나르는 백성들의 고통을 다루었다는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