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천구의(天球儀)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세종 때에 경회루 연못 북쪽에 지름 2m 크기의 혼상이 만들어진 것이 첫 기록으로 남아 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혼상은 곧 칠포(漆布)로 몸체를 만들었는데, 탄환과 같이 둥글고, 둘레가 10척 8촌 6푼이며, 종횡(縱橫)에 주천도분(周天度分)을 그렸다. 적도는 가운데에 있고, 황도(黃道)는 적도의 남북으로 드나들게 하였는데 각각 24도약(弱)이다. 중외(中外)의 관성(官星)을 나열해 놓았으며,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1도를 더 지난다. 태양을 황도에 올려놓고 매일 1도씩 운행시키면 천체의 운행과 일치하게 되어 있다. 물을 세차게 흐르게 하여 기계를 돌리는데, 이 부분은 속으로 감추어져 있어 나타나지 않게 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1432년(세종 14)에 세종의 명을 받아 정초(鄭招)와 정인지(鄭麟趾)는 고전 연구를 담당하고, 이천(李蕆)과 장영실(蔣英實)이 제작 감독을 맡아 먼저 목간의(木簡儀)를 만들어 한양의 위도 38° 4분의 1을 측정하였다.
이어서 구리를 부어 여러 의상(儀象)을 만들었는데 혼상도 그 중의 하나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도산서원에는 조선 중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혼상이 있는데, 천구에 그어진 성관(星官)이 많이 마모되어 있고 회전동력장치가 붙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