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약여(躍汝). 홍서(洪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종만(洪宗萬)이고, 아버지는 승지 홍윤(洪錀)이며, 어머니는 강릉(姜綾)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우통례를 거쳐 1814년(순조 14) 부호군이 되었는데, 이때 신유박해 때 관직이 추탈된 채제공(蔡濟恭)의 무고죄를 변명하다가 경상도 기장현(機張縣)에 유배되었다.
그 뒤 유배에서 풀려나 대사간·안주목사·승지·호군 등을 역임하였다. 시문에 뛰어나 정약용(丁若鏞)·이유수(李儒修)·한치응(韓致應) 등과 함께 죽란시사(竹蘭詩社)의 동우(同友)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