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의영(義榮). 자는 이중(而中), 호는 하우당(何愚堂)·금시헌(今是軒). 아버지는 영의정 홍낙성(洪樂性)이다.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이다.
1763년(영조 39)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시세(時世)에 뜻이 맞지 않아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영조의 특제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775년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고, 누진하여 1802년(순조 2) 한성부판윤·개성부유수를 거쳐, 1806년 공조판서·형조판서를 지내고, 강원도관찰사에 보직되어 재임 중에 죽었다. 시호는 효헌(孝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