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중(養仲), 호는 담녕(澹寧). 원주 출생. 홍만기(洪萬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중효(洪重孝)이고, 아버지는 참판 홍수보(洪秀輔)이며, 어머니는 박종윤(朴宗潤)의 딸이다. 대사헌 홍인호(洪仁浩)의 아우이다.
1784년(정조 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초계문신(抄啓文臣)에 선발되고 지평·집의·응교 등을 거쳐, 동부승지, 호조·예조·공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1786년 교리로 있을 때 「진팔조이강소(陳八條二綱疏)」를 올려서 언로를 넓힐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경비를 절감할 것, 군사를 조련하여 유사시에 대비할 것, 법금을 엄격히 하여 기강을 세울 것, 상벌을 명백히 하여 권징을 보일 것 등을 진언하고, 1802년(순조 2) 한성부판윤이 되어 『선조심리판부(先朝審理判付)』 16권을 찬진(撰進)하였다.
이듬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의주부윤·대사간을 역임하고, 이어 호군이 되었는데, 영남유생 권재강(權載綱) 등의 진소(陳疏)사건과 관련되어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복직되어 예조·형조·공조의 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1815년과 1823년 두 차례에 걸쳐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25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저서로 『담녕집』·『청구시지(靑丘詩誌)』가 있다. 시호는 정헌(正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