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의주부윤,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담녕(澹寧)
  • 양중(養仲)
  • 시호정헌(正憲)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산(豊山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 사망 연도1826년(순조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의주부윤|대사간|공조판서
  • 출생 연도1758년(영조 34)
  • 출생지원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균 (부산수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홍의호 글씨 미디어 정보

홍의호 글씨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의주부윤,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중(養仲), 호는 담녕(澹寧). 원주 출생. 홍만기(洪萬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중효(洪重孝)이고, 아버지는 참판 홍수보(洪秀輔)이며, 어머니는 박종윤(朴宗潤)의 딸이다. 대사헌 홍인호(洪仁浩)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4년(정조 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초계문신(抄啓文臣)에 선발되고 지평·집의·응교 등을 거쳐, 동부승지, 호조·예조·공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1786년 교리로 있을 때 「진팔조이강소(陳八條二綱疏)」를 올려서 언로를 넓힐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경비를 절감할 것, 군사를 조련하여 유사시에 대비할 것, 법금을 엄격히 하여 기강을 세울 것, 상벌을 명백히 하여 권징을 보일 것 등을 진언하고, 1802년(순조 2) 한성부판윤이 되어 『선조심리판부(先朝審理判付)』 16권을 찬진(撰進)하였다.

이듬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의주부윤·대사간을 역임하고, 이어 호군이 되었는데, 영남유생 권재강(權載綱) 등의 진소(陳疏)사건과 관련되어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복직되어 예조·형조·공조의 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1815년과 1823년 두 차례에 걸쳐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25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저서로 『담녕집』·『청구시지(靑丘詩誌)』가 있다. 시호는 정헌(正憲)이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