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호 ()

홍의호 글씨
홍의호 글씨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의주부윤,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양중(養仲)
담녕(澹寧)
시호
정헌(正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58년(영조 34)
사망 연도
1826년(순조 26)
본관
풍산(豊山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출생지
원주
주요 관직
의주부윤|대사간|공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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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의주부윤,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중(養仲), 호는 담녕(澹寧). 원주 출생. 홍만기(洪萬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중효(洪重孝)이고, 아버지는 참판 홍수보(洪秀輔)이며, 어머니는 박종윤(朴宗潤)의 딸이다. 대사헌 홍인호(洪仁浩)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4년(정조 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초계문신(抄啓文臣)에 선발되고 지평·집의·응교 등을 거쳐, 동부승지, 호조·예조·공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1786년 교리로 있을 때 「진팔조이강소(陳八條二綱疏)」를 올려서 언로를 넓힐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경비를 절감할 것, 군사를 조련하여 유사시에 대비할 것, 법금을 엄격히 하여 기강을 세울 것, 상벌을 명백히 하여 권징을 보일 것 등을 진언하고, 1802년(순조 2) 한성부판윤이 되어 『선조심리판부(先朝審理判付)』 16권을 찬진(撰進)하였다.

이듬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의주부윤·대사간을 역임하고, 이어 호군이 되었는데, 영남유생 권재강(權載綱) 등의 진소(陳疏)사건과 관련되어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복직되어 예조·형조·공조의 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1815년과 1823년 두 차례에 걸쳐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25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저서로 『담녕집』·『청구시지(靑丘詩誌)』가 있다. 시호는 정헌(正憲)이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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