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형오(亨五). 아버지는 판결사 홍사효(洪思斅)이며, 홍득일(洪得一)의 동생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24세에 음사로 출사한 뒤 연이어 군현을 다스렸는데 그 치적이 훌륭하였다. 광해군 때 정치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관직을 떠나 충주 가흥(可興) 강변에서 우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호조정랑이 되었다가 곧 외직으로 나가 주군에서 고을살이를 하였다.
그는 정치를 함에 청렴, 공평하여 이르는 곳마다 그의 업적을 추모하는 비가 세워졌다. 일평생 자기를 굽히고 사람에게 비굴하게 대하는 것을 수치로 삼았다.
공주에 있을 때 그 곳 지방관과 서로 사이가 나빠 벼슬을 그만두었다. 공직을 떠난 지 20여 년 동안 큰 기상으로 자기의 뜻을 삼지 않고 조용하고 한가한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