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년(진흥왕 33)에 진흥왕이 제정하여 583년(진평왕 5)까지 사용하였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새 연호를 제정하는 것이 상례인데, 당시의 신라는 그렇지 아니한 듯하다.
진흥왕도 즉위 12년(551)에 이르러서야 법흥왕의 연호인 건원(建元)에서 개국(開國)으로 개원하였고, 홍제의 경우도 진평왕 6년(584)에 이르러서야 건복(建福)으로 개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흥왕은 12년에 개국, 29년(568)에 대창(大昌), 이어서 33년에는 홍제를 각각 제정하여 3개의 연호를 가진 다원(多元)의 군주였다. 그런데 이 3개의 연호는 뻗어나는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홍제’라는 말은 진흥왕이 여러 곳의 백성들이 즐거이 따르기를 바라는 이상을 담은 것이다. 또 이는 강력한 왕의 권위를 나타낸 것으로, 진흥왕의 왕권이 전제적 수준으로 고양되고 있었음을 말한다. →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