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계습(季習), 호는 임간(林磵). 홍구정(洪九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응운(洪應運)이고, 아버지는 승지 홍경안(洪景顔)이며, 어머니는 최복관(崔復觀)의 딸이다.
1813년(순조 13)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강원도암행어사로 나갔다. 1835년(헌종 1) 대사성을 거쳐 공조참의·이조참판·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1845년 대사헌에 이르렀다. 이어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850년(철종 1) 지경연사(知經筵事)·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도총관이 되고, 이듬해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역대의 사적(事蹟)과 국조(國朝)의 전장(典章)에 널리 통하였고, 서예·산수(算數)·문학·법리(法理) 등에도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