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조선에스페란토문화사를 창립한 무정부주의운동가.에스페란토어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34년 에스페란토어로 소설 「농촌 개척자」를 『Aganto』라는 문학잡지에 연재하다가 학생사건에 관련되어 일본에서 추방되었다. 1937년 서울에서 무정부주의 운동의 학술단체인 조선에스페란토문화사를 창립하고 순(純)조선에스페란토어로 된 『Korea Esperantista』를 발행하였다.
이 단체는 시기적으로 볼 때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이후 조선에서 일체의 독립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허용하지 않고 탄압을 가하던 시기에 창립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1939년 3월 일제의 탄압으로 에스페란토지(誌)는 폐간되었다. 최해청(崔海淸)과 함께 근로자 교육기관으로서 대구 청구대학(靑丘大學)을 육성하는 데 공이 컸으며, 1968년 대구에서 죽을 때까지 30여년간 우리나라 에스페란토어 발전에 공이 컸다.
전세계 아나키스트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인류애와 평화주의를 근본이념으로 하는 에스페란토세계정신에 공명하여 신문·잡지에는 매양 에스페란토어란을 두고 그 보급에 힘쓰고 있었으니만큼, 그의 에스페란토어운동은 곧 코스모폴리탄적인 평화주의운동이었고, 각국의 아나키스트운동과의 연대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 바 컸다.
참고문헌
- 『한국아나키즘운동사 전편-민족해방투쟁-』(무정부주의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 『한국공산주의운동사』2·3(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9·197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