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음동정사(華川華陰洞精舍址)는 조선 현종 때의 문신 · 학자인 김수증(金壽增)이 1689년 기사환국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이곳 화악산(華嶽山) 북쪽 절경을 이룬 계곡을 이용하여 사(舍) · 암(庵) · 정(亭) · 대(臺) 등을 짓고 자연석에 글자를 새겨 놓고 후학을 가르치며 은둔하던 곳이다.
현재, 건축물은 전부 소멸되고 그 터와 자연석, 바위에 새겨진 글자와 도상만이 남아 있다.
1990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 당쟁과 정치적 불안 속에서 생활하던 사대부 관료들은 언제나 때가 되면 조용한 자연 속에 은거하여 독서와 후생(後生)을 가르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김수증은 1670년(현종 11) 이곳에 들어와 초당을 짓고 곡운정사(谷雲精舍)라 하였으며, 농수정(籠水亭)과 가묘(家廟)도 건립하였다.
그 후 잠시 관계에 나가기도 하였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동생 수항(壽恒)이 사사되자 다시 벼슬을 버리고 곡운정사로 돌아왔다.
『화음동지(華陰洞誌)』에 따르면, 김수증은 정자를 짓고 요엄류정(聊淹溜亭), 계곡의 남쪽 언덕에 네 칸 집을 짓고 부지암(不知庵), 암자 왼쪽에 두어 칸 집을 지어 자연실(自然室), 울타리를 치고 문을 닫아 함청문(含淸門), 울타리 밖의 채포(菜圃 : 채소밭)를 불가부지포(不可不知圃), 문 밖에 우물을 파고 한청정(寒淸井), 우물 아래 못을 파고 청여허당(淸如許塘), 못가에 축대를 쌓고 표독립대(表獨立臺), 정자 아래 물가의 넓은 바위를 천관석(川觀石), 천관석 옆에 있는 다리를 추진교(趨眞橋), 추진교 옆의 바위를 음송암(蔭松巖)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석문오(石門摀)가 있는데, 이곳이 밖에서 들어오는 길목이다. 산 아래 물가에 요엄류정과 맞보고 있는 바위에 정자 하나를 더 세워 삼일정(三一亭)이라고 하였는데, 지형 관계로 기둥 세 개만 세웠다. 들보 밑바닥에 태극도(太極圖)를 그려넣고, 그 옆에 팔괘(八卦)를 그렸다.
세 개의 서까래에는 각각 ‘陰陽(음양), 剛柔(강유), 仁義(인의)’의 여섯 글자를 쓰고, 세 기둥에는 모두 64괘(卦)를 그렸다. 세 기둥은 각기 8각이어서 모두 24각으로 24절기를 의미하였으며, 십이벽괘(十二辟卦) · 십이율(十二律) · 십이지(十二支)를 써넣었다.
삼일정 앞에 수십 칸이나 되는 크고 넓은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 하도낙서(河圖洛書) · 선후천팔괘(先後天八卦) · 태극도를 그리고, 이 바위를 인문석(人文石)이라고 불렀다. 또 인문석에는 ‘河(하) · 洛(낙) · 羲(희)’, ‘人文石(인문석)’이라고 7자를 전자로 새겼다.
또 표독립대 동쪽 모퉁이에 크고 높은 바위 위에 수십 척이나 되는 긴 다리를 놓고 한래왕교(閑來往橋)라고 하였으며, 바위를 월굴암(月窟巖), 다리 건너 큰 바위를 천근석(天根石)이라고 불렀다.
삼일정 위쪽에 3칸 집을 짓고 무명와(無名窩)라 하였으며, 동쪽의 한 칸에 붉은 칠을 하고 제갈무후(諸葛武侯) 화상과 매월당(梅月堂:김시습)의 초상을 걸어 놓고 ‘有知堂(유지당)’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동쪽으로 가면 바위벼랑이 병풍처럼 둘러 있는데 이곳을 장운병(張雲屛)이라고 하고, 아래쪽을 소산대(小山臺), 위쪽을 산봉암(山峰巖)이라고 하였다. 삼일정의 물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넓이가 수십 자나 되는 너럭바위가 있는데, 이것을 호석(互石)이라고 하며, 호석의 동편과 장운병의 서편 사이를 명서오(冥棲塢)라고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송풍정(松風亭) · 삼일정(三一亭) · 부지암(不知庵) · 유지당(有知堂) 등 몇 채의 건물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산재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복원된 삼일정과 송풍정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인문석 북쪽으로 "삼일정(三一亭)", 서쪽으로 "월굴암(月窟巖)", 남쪽으로 "천근석(天根石)"의 각자(刻字)와 기둥을 세웠던 자리가 남아있다.
주자성리학에 의해 음양소식관(陰陽消息觀)을 정사의 조경에 응용하고, 이러한 사상을 그림으로 형상화하여 태극도(太極圖) · 하도낙서(河圖洛書) · 선후천입궤도(先後天入卦圖) 등을 정사의 경내 바위에 새긴 것이 특징적이다.
화음동정사지는 조선조 조형예술과 성리학, 정사에 나타난 구조 및 사상적 계보 파악 등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