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4년(의종 8)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최윤의(崔允儀)가 지공거(知貢擧)일 때 과거에 장원하였다.
1178년(명종 8) 찰방사(察訪使)를 분견(分遣)할 때 기거주(起居注: 諫官의 하나)로서 춘주도(春州道)에 파견되어 백성들의 어려움을 자세히 조사하고, 관리 및 봉사자(奉使者)를 내몰았다.
이 때 10년 이전까지를 한하여 그 공로와 성적을 상하로 추론하도록 하니 탄핵받은 자가 800여 명이나 되었다. 1186년(명종 16)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송돈광(宋惇光) 등 33인의 진사를 선발하였고, 이어 대사성으로 국자시(國子試)를 주관하여 양공준(梁公俊) 등 32인, 명경(明經) 5인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