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국보(國寶), 호는 용헌(慵軒). 사우(士佑)라고도 한다. 봉예랑 황전(黃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자헌대부 호조판서 황귀경(黃貴卿)이고, 아버지는 증직좌찬성 숭정대부 황희성이며 어머니는 진유경(秦有經)의 딸이다.
1507년(중종 2) 진사가 되었고, 1514년(중종 9)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520년(중종 15) 지평에 올랐고, 그 뒤 문학·헌납·보덕·응교 등을 거쳐, 1529년(중종 24) 대사간이 되었다. 이듬해 좌승지를 거쳐 부제학을 지내고, 1532년(중종 27) 한성부우윤·대사헌이 되었다.
처가와 이성(異姓) 사촌 되는 김안로(金安老)와 친밀하였으며, 1534년(중종 29)에 형조참판을 거쳐 호조판서로 승진하였고, 1535년(중종 30)에는 예조판서와 우찬성에 올랐다. 1536년(중종 31) 1월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가 같은 해 3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