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고분군

  • 역사
  • 유적
  • 삼국
북한 평안남도 용강군 황산(黃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 이칭황산남록고분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선숙
  • 최종수정 2025년 09월 19일
평안남도 용강 황산 남록 고분 미디어 정보

평안남도 용강 황산 남록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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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평안남도 용강군 황산(黃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용강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786m 정도 떨어진 청룡산(靑龍山)에서 이어지는 황산이라고 부르는 구릉의 남쪽 일대에 수백 기의 고분이 산재되어 있다. 황산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용강군 해운면 일대이며 인근의 서화면에서 일부 고분이 분포한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바 있는데 모두 돌로 만든 널방을 가진 봉토분(封土墳)으로 이 고분군 가운데에는 봉토가 비교적 완전한 것도 존재하나 대부분은 이미 헐어서 돌덧널〔石槨〕이 노출된 상태이다.

내용

고분들은 돌덧널 천장의 구조적 차이로 크게 양분해볼 수 있다. 천장이 평석(平石) 한 장으로 이루어진 것과 천장이 모줄임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다. 전자는 널방 네 벽도 역시 한장의 돌로써 만든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후자는 다양하여 널방 네 벽이 한장의 돌로 이루어진 것과 깬돌으로 쌓은 것도 있다.

또 천장에 있어서도 네 벽에 2층 내외의 창방을 내고 우삼각(隅三角)을 한 뒤 다시 평삼각(平三角)을 중복한 다음 정석(頂石)을 덮은 형태가 있는가 하면, 네 벽에 2층 내외의 창방을 내고 3각의 모줄임으로 하지 않고 바로 정석을 덮은 것도 있다. 전자는 규모도 대체로 큰 것이 많으며, 후자는 작은 편이다.

특히, 후자에 있어서는 한 봉토 안에 덧널이 2∼3개가 있는 경우도 있고, 많은 경우는 7개에 이르기도 한다. 그 구조는 대체로 조잡하고, 파괴되기 쉬우며 네 벽과 전후벽에서 혹은 전벽만, 또는 후벽만으로서의 창방만 남아 있어 이른바 탱석(撑石)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이 고분군의 덧널은 주로 부근의 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화강암이다.

의의와 평가

고분군이 위치한 황산 남쪽 구릉에는 돌무지무덤이 확인되지 않고 모두 봉토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황산고분군은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 조성된 무덤떼로 추정되지만 고분이 조성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 -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동북아역사재단, 2009)

  • - 『朝鮮古蹟圖譜』(朝鮮總督府, 1917)

  • - 『大正5年度古蹟調査資料報告』(朝鮮總督府,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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