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우참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뒤에 풀려나와 1778년(정조 2) 부교리로 검토관을 겸하였고, 이 해 겨울 영남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복명하였으나, 안찰(按察)이 부실하였다는 죄목으로 파직되었다. 1781년 다시 서용,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승지에 올랐으나, 일 처리를 소홀히 하여 파직되었다.
곧 다시 대사성으로 기용되었고, 이듬해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실수를 범하여 삭직되었다. 그 뒤 이조참의·대사헌·이조참판·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797년 공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개성부유수로 나가서는 왕에게 건의하여 국경수비에 힘썼다.
그 뒤 예조판서·홍문관제학 등을 역임하고, 1800년(순조 즉위년) 강화유수로 나갔다가 당시 강화에 위리안치되어 있던 은언군 인(恩彦君 裀: 사도세자의 서자)의 탈출사건이 일어나 파직되고, 이어 김해에 유배되었다.
곧 풀려나와 형조판서가 되고, 그 뒤 예문관제학·판의금부사·우참찬·이조판서 등을 거쳐 1807년 상호군에 이르렀다. 문장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일통표(一統表)』와 시문집 약간이 가장되어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귀은당집(歸恩堂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