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황주(黃州). 초명은 인기(仁驥). 자는 전여(展汝), 호는 일수호(一水戶). 아버지는 대사간 황간(黃幹)이다.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이다.
1773년(영조 49) 생원시에 합격하고 1796년(정조 20) 휘릉참봉(徽陵參奉)에 임명되었다. 문학과 행의(行誼)로써의 지우(知遇)를 받아 정조로부터 신간된 『은중경(恩重經)』과 『두율(杜律)』을 하사받았다.
정조가 죽자 매우 슬퍼하여 매년 휘신(諱辰)을 당하면 3일 동안 소식(素食)을 하였다. 그 뒤 임실현감·형조좌랑·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광주판관(廣州判官)·상의원첨정을 역임하였으며, 강화부경력으로 있을 때는 선정을 베풀어 부민들이 공덕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1826년(순조 26)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저서로는 『미인지(美人志)』 3책, 『이필차재(二必箚裁)』 2책과 유고 10권이 가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