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형조정랑, 성균관직강, 선공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1년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들어가 왜국의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여 명나라 조정의 칭찬을 받았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도순찰사 권징(權徵)의 종사관이 되어 군량미 조달에 힘썼다.
1594년에 파주목사가 되고, 1597년 접반관(接伴官)이 되어 명나라의 사신을 영접하였다. 1600년 철산군수가 되고, 1604년 부평부사가 되었다.
1608년에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호조와 공조의 참의를 지내고, 함경남도병마절도사로 추천되었으나 대북파의 방해로 임명을 받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의 모함을 받아 체포되었다가 심희수(沈喜壽)의 변호로 석방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춘천부사로서 군사를 이끌고 솔선하여 왕을 호종하였으나, 난이 평정된 뒤 무고로 황해도 연안에 유배되었다가 무고임이 밝혀져서 그 해 겨울에 풀려났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복직되어 경기호소사(京畿號召使)로 의병을 불러모아 적에 대비하다가 그 해 겨울에 죽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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