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최초의 성당으로 1982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풍수원에 신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1866년(고종 3) 병인박해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더욱 심해지면서부터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인 이곳으로 피신하여 화전을 일구거나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자촌을 이루었다. 1886년(고종 23) 조불조약(朝佛條約)의 체결로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자 당시의 조선교구장 블랑(Blanc, G. M. J.) 주교는 1888년 안변(安邊)에서 전교하던 르 메르(Le Merre, L. B. J.) 신부를 풍수원에 파견하여 본당을 창설하였다.
르 메르의 대를 이어 1896년(고종 33)에 부임한 정규하(鄭圭夏)는 1910년에 현재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준공하고 1913년에는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서울 약현성당(藥峴聖堂)과 비슷한 규모의 구조로 된 이 성당은 정면에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아치형으로 개방되어 있다. 종탑부 꼭대기에는 낮은 8각형의 첨탑(尖塔)이 서고, 가장자리마다 작은 첨탑이 서 있으며, 종탑부와 동단(東端)에 쑥 내민 다각형 부분에는 원형의 장미창과 뾰족한 아치형의 창이 나 있다.
안에는 목조의 열주(列柱)가 서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게끔 줄눈을 넣은 페인트칠로 마감해 놓았고, 제대(祭臺)부는 삼각형으로 꺾여 있으며, 각 면에는 뾰족한 아치형의 창이 셋 나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니나 채색유리가 끼어져 있다.
서울 교구에 속하였던 이 성당은 1939년 춘천교구의 설정으로 이에 편입되었고, 다시 1965년 원주교구 설정과 함께 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