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합각지붕건물. 지방군사훈련을 사열하던 건물이며 처음 지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지금 있는 건물은 17세기경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네 모서리에 약간씩 줄인 28개의 기둥이 두 줄로 나란히 서 있는데, 그 중 정면과 남쪽면의 앞 줄 기둥들에는 높이 1m 정도의 돌기둥을 받쳤다. 이것은 정면의 위풍을 드러내고 비바람으로부터 기둥이 쉽게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공(枓栱)은 단익공(單翼工)이고, 제공(諸貢)은 꽃가지형이다.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 대신 소로받침을 하였다. 지붕은 모루단청[毛老丹靑 : 머리초에만 그린 단청]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 말타고 활쏘는 무사의 그림이 특히 잘 되었다.
본래는 건물 안에 널마루를 깔고 둘레에 난간을 설치하였으나 어느 시기엔가 없어지고 말았다. 건물 주변에는 탑비(塔碑)가 3개 있었는데, 그 중 2개는 이화정(梨花亭)으로 옮겨갔고 하나만 남아 있다.
이화정은 객관(客館) 건물로 임진왜란 때 선조가 100여일간 머물렀으며, 그 뒤 봉림대군(鳳林大君, 후의 효종)이 인질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올 때 유숙하였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