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평안남도 평원군 평원읍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군사훈련을 사열하던 누정. 정자.
내용
네 모서리에 약간씩 줄인 28개의 기둥이 두 줄로 나란히 서 있는데, 그 중 정면과 남쪽면의 앞 줄 기둥들에는 높이 1m 정도의 돌기둥을 받쳤다. 이것은 정면의 위풍을 드러내고 비바람으로부터 기둥이 쉽게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공(枓栱)은 단익공(單翼工)이고, 제공(諸貢)은 꽃가지형이다.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 대신 소로받침을 하였다. 지붕은 모루단청[毛老丹靑 : 머리초에만 그린 단청]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 말타고 활쏘는 무사의 그림이 특히 잘 되었다.
본래는 건물 안에 널마루를 깔고 둘레에 난간을 설치하였으나 어느 시기엔가 없어지고 말았다. 건물 주변에는 탑비(塔碑)가 3개 있었는데, 그 중 2개는 이화정(梨花亭)으로 옮겨갔고 하나만 남아 있다.
이화정은 객관(客館) 건물로 임진왜란 때 선조가 100여일간 머물렀으며, 그 뒤 봉림대군(鳳林大君, 후의 효종)이 인질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올 때 유숙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재관리국, 1985)
-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통일원, 199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