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836년∼838년.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제륭(悌隆 혹은 愷隆·悌顒). 아버지는 원성왕의 손자로 익성대왕(翌成大王)으로 추봉된 김헌정(金憲貞, 일명 草奴)이고, 어머니는 순성태후(順成太后)로 추봉된 아간(大阿干)충연(忠衍)의 딸 포도부인(包道夫人, 혹은 美道·梁乃·巴利夫人)이다. 왕비는 충공갈문왕(忠恭葛文王)의 딸 문목왕후(文穆王后)이다. 그리고 아들은 뒤에 의공대왕(懿恭大王)으로 봉해진 계명(啓明)이다.
왕이 되기 전 제륭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아버지 헌정이 819년(헌덕왕 11)에 병으로 다닐 수 없게 되자 왕으로부터 금장식의 자색 단장(檀杖)이 하사되었다. 흥덕왕이 죽자 사촌동생인 균정(均貞)과 5촌 조카인 제륭이 서로 왕위를 다투게 되었다.
이에 시중인 김명(金明)과 아찬(阿飡)이홍(利弘)·배훤백(裵萱伯) 등은 제륭을 받들고, 아찬김우징(金祐徵)과 조카인 예징(禮徵) 및 김양(金陽)은 균정을 받듦으로써 한때 궁궐에서 서로 싸우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균정은 전사하고 김양은 화살을 맞아 우징 등과 더불어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궁복(弓福 : 장보고)에게로 달아나 의탁하였다. 싸움에 이긴 제륭이 즉위하였고, 김명이 상대등(上大等)에, 이홍이 시중에 임명되었다.
838년(희강왕 3)에 불만을 가진 김명·이홍 등이 다시 난을 일으키자 희강왕은 보전할 수 없음을 알고 자진하였다. 소산(蘇山)에 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