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통일신라의 제43대(재위: 836년~838년) 왕.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이에 시중인 김명(金明)과 아찬(阿飡)이홍(利弘)·배훤백(裵萱伯) 등은 제륭을 받들고, 아찬김우징(金祐徵)과 조카인 예징(禮徵) 및 김양(金陽)은 균정을 받듦으로써 한때 궁궐에서 서로 싸우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균정은 전사하고 김양은 화살을 맞아 우징 등과 더불어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궁복(弓福 : 장보고)에게로 달아나 의탁하였다. 싸움에 이긴 제륭이 즉위하였고, 김명이 상대등(上大等)에, 이홍이 시중에 임명되었다.
838년(희강왕 3)에 불만을 가진 김명·이홍 등이 다시 난을 일으키자 희강왕은 보전할 수 없음을 알고 자진하였다. 소산(蘇山)에 장사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라하대(新羅下代)의 왕위계승(王位繼承)과 정치과정(政治過程)」(이기동, 『역사학보』 85, 1980)
- 「신라하대(新羅下代)의 집사성(執事省)」(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주각,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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