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염상섭은 근대 문학 형성기에 근대적 주체성을 확립하고 리얼리즘이라는 계보를 완성한 문학가였다.『견우화』는 그의 초기의 문학활동에 있어서 핵심적인 관심사인 근대적 주체성의 의미와 그 주체의 확립 방법을 집중적으로 제시한 세 편의 초기 소설을 묶어낸 첫 소설집이다.
1920년 5∼6월 김환의「자연의 자각」을 둘러싸고 김동인과 논쟁을 벌인 염상섭은 자신의 문학사상을 소설로 형상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염상섭만의 특이한 역사철학을 담아낸「표본실의 청개구리」,「암야」,「제야」를 잇달아 발표한다. 이 시기 염상섭은 이 ‘현실폭로의 비애’ 속에서 자기를 완성하는 것을 ‘지상선’으로 규정하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과정을 충실하게 밟을 것을 역설하거니와,『견우화』는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이 담긴 초기 소설들을 묶은 소설집이다. 소설집의 ‘자서(自序)’에는 ‘소설이란 것이 인생과 및 그 종속적 제상(諸相)을 묘사하는 것인 이상 인간이 어떻게 고민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런 의미로 나의 처음 발간하는 단편집에 대하여 야차(夜叉)의 마음을 가진 보살(菩薩)을 의미하는『견우화』라는 표제를 택하였’다고 씌어져 있다. 나혜석이 표지 장정을 맡았다.
「표본실의 청개구리」,「암야」,「제야」가 모두 발표된 즈음인 1923년 5월 편집을 마쳤으나 실제 간행은 1924년 8월 박문서관에서 이루어졌다.
『견우화』는 흔히 염상섭의 초기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세 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암야」는 상거래의 위선적 겉치레를 ‘인간대사’라 명명하는, 전통적 도덕과 자기완성이라는 목적을 잃은 (타락한) 개인주의 등에 의해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을 억압당하고 더 나아가 그 희망의 징후조차 발견하지 못해 무력감에 빠져 있는 주인공의 암울한 고백을 펼쳐 놓았다. 다음으로「표본실의 청개구리」는 급격한 교환세계로의 진입 혹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로 인한 이념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광증에 빠진 ‘김창억’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더 이상 불가능한 꿈을 실현해야 하는 지식인의 우울과 환멸, 그리고 내적 갈등을 다루었다. 마지막으로「제야」는 자본주의화로 인해 오염된 사회에 더욱 타락한 형태로 부정하다 결국은 몰락하는 주인공의 내면 고백을 담아놓았다. 이 세 편의 소설은 모두 타락한 현실에 타락한 방식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위선적인 세상에 위악적인 행동으로 맞서다가 스스로 자멸하는 인물들의 우울과 환멸을 ‘고백체’의 형식을 빌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견우화』는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전통적 도덕과 자본주의의 물신화된 가치에 기계적으로 순응하는 ‘(목적 잃은) 개인주의’라는 두 개의 억압에 구속된 당대 지식청년의 우울과 환멸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과이다. 뿐만 아니라 그 우울을 자기를 완성하지 못하여 거듭 절망하는 주체들의 ‘고백’을 통해 형식화함으로써 ‘스스로의 지성을 사용해’야 한다는 근대적 주체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견우화』는 비로소 한국소설사에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가치를 증명하는 근대적 인간형을 명실상부하게 탄생시켰는 바, 이것이야말로『견우화』의 문학사적 가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