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은 중국 대륙에서 활동 중인 조선·일본·베트남·인도·타이완 등 동아시아 피압박 민족운동 세력을 망라하는 국제대회의 개최를 계획하였다.
1941년 9월 말 재화일본인민반제동맹(在華日本人民反帝同盟) 옌안분회·화북조선청년연합회(華北朝鮮靑年聯合會)·동북구망총회(東北救亡總會) 옌안분회·섬감녕변구민족사무위원회(陝甘寧邊區民族事務委員會)·해방일보사·중화전국문예항적협회(中華全國文藝抗敵協會) 옌안분회·주더[朱德]·우위장[吳玉章]·린보취[林伯渠]·판원란[范文瀾]·샤오산[蕭三] 등을 발기인으로 하는 모임이 발족하였다.
발기회는 “동방 각 민족의 급무는 신속히 단결하여 일체의 역량을 집중하여 중국을 돕고 소련을 지원하여 일본파시스트의 진격을 격파하고, 최후로 모든 파시스트 강도를 멸망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 동방 각 민족의 역량은 아직 진정한 통일에 이르지 못하였고, 견강하게 단결되지도 않았다. 만일 단결과 통일된 역량이 없다면 강대한 파시스트와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연안에서 동방 각 민족의 대표대회를 발기하여, 동방 각 민족의 친우들이 한 곳에 모여, 금후 일체의 반파시스트 사업의 진행에 대해 토의하고, 아울러 통일된 조직을 건립하자”고 대회소집의 취지를 밝혔다.
이어 10월 12일 옌안의 중국공산당 중앙대강당에서는 동방각민족반파시스트대회 주비회의가 열렸다. 참가자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버어마·베트남·필리핀·인도·유태·타이완·조선·일본 등의 반제국·반침략운동 세력과 중국의 한족(漢族)·만주족(滿洲族)·몽골족(蒙古族)·회족(回族)·장족(藏族)·묘족(苗族)·이족(彛族) 등 18개 민족대표를 비롯한 140여 명이었다. 5일간 계속된 대회기간 동안 저녁 연회에는 중국공산당 극단과 옌안 일본공농학교(日本工農學校)의 연극공연, 묘족·장족 등의 민족가무, 몽고씨름 및 화북조선청년연합회의 연극공연 등이 거행되었다.
동방각민족반파시스트대표대회는 10월 26일에 개최되었다. 참가자는 일본·유태·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버마·태국·베트남·조선·타이완·몽골족·회족·장족·이족·묘족·만주족·한족 등의 대표 130여 명이었다. 대회에서는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네루(Pandit Jawaharlal Nehru)·타고르(Rabīndranath Tagore)·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장제스[蔣介石]·마오쩌뚱[毛澤東]·주더[朱德]·숭칭링[宋慶齡]·허샹잉[何香凝]·양징위[楊靖宇)·김구(金九) 등 35명의 명예 주석단을 선출하였다.
인도네시아 대표가 영어로 개회사를 하였고, 일본인민반전동맹·조선의용대·일본사병각성연맹(日本士兵覺醒聯盟)·팔로군(八路軍)·신사군(新四軍) 및 화북·화중지구 당·정·민 기관 단체의 축전 낭독, 중국공산당 군사위원회 참모장 예지엔잉[葉劍英]과 중앙정치국 위원 겸 팔로군·신사군 총사령 주더의 연설이 있었다.
27일 화북조선청년연합회 대표는 “우리들은 화북의 조선청년으로서 최대의 열정으로 이 대회를 옹호하며, 동시에 반파시스트 사업이 영원토록 동방반파시스트대동맹과 함께 서 있고 함께 분투하기 바란다”는 연설을 하였다. 이날 회의에서 토의된 주된 내용은, “소련은 전 인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독일파시스트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소련의 승리를 희망할 뿐 아니라, 마땅히 소련을 지원해야 한다. 소련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우리들 원동 민족도 직접 원동 일본파시스트와의 투쟁에서 소련의 원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반파시스트 민족통일전선의 형성을 위하여, 우선 일본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광범한 인민전선을 결성하는 동시에, 모든 일본침략에 반대하는 동방 각국 인민의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한다. 그 중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일본 민족자산계급과 지주도 당연히 포함된다. 독일이 소련을 침략한 이후 루즈벨트·처칠 회담과 모스크바 3국 회의를 거쳐, 영국·미국·중국·네덜란드가 마닐라에서 군사회의를 소집함으로써, 반파시스트 구 국제전선이 건립되기 시작했다”는 것 등이었다.
28일 무정(武亭)은 대한제국 멸망 후 정치·경제·문화 등의 정황과 한국민의 반일투쟁에 대하여 연설하면서, “한국은 이미 혁명적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였고, 또 현재의 임무는 조직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고, 외부와 내부의 투쟁을 보다 밀접하게 배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은 반일투쟁상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은 장차 한국인민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29일에는 마오쩌뚱이 각 민족의 단결 강화를 호소하는 치사를 하였고, 30일 대회 폐막일에는 동방각민족반파시스트대동맹(東方各民族反法西斯大同盟)의 결성을 선언하였다. 대회는 무정의 폐회사로 막을 내렸다.
동방각민족반파시스트대동맹은 총부를 중국 옌안에 설치하고, 각지에 분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각 민족의 항일의용대를 조직하여, 화북전선으로 보내 중공의 항일공작에 참가시킬 것을 호소하였다. 또 동방각민족학원(東方各民族學院)을 설립하여, 각 민족 간의 반파시스트·일본제국주의 문제를 연구하고 간부를 양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옌안지부의 경우, “동방 각 민족의 역량을 단결시켜 공고한 반파시스트통일전선을 결성하여, 중국·소련 및 독일·이탈리아·일본파시스트에 침략당한 모든 민족과 국가를 원조하고, 공동으로 파시스트 강도를 타도하고, 동방 각 민족의 자유평등과 해방을 위해 노력한다”는 간장(簡章)을 채택하였다. 주요 인물은 주더[朱德]·린보취[林伯渠]·차이창[蔡暢]·파수화[巴素華]·무정(武亭)·샤오산[蕭三]·리옌루[李延祿]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