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가 체결되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었다. 인천이 개항되자 조선시대까지 바다를 통한 대외교역의 중심지였던 부산항에 버금가는 새로운 무역의 요충지로 인천항이 떠오르게 되었다. 개항과 동시에 1883년 4월 13일 처음으로 상업에 종사할 목적으로 아주 적은 수의 일본인이 들어왔다. 계속해서 6월경부터 본격적인 일본인 진출이 시작되었으며, 청일전쟁을 전후해서는 많은 일본인들의 활동무대가 형성되었다.
1892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당시 인천의 조선신보사에서 근무하던 아오야마 고헤이라는 일본인 기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개항 초기 인천의 모습을 그린 안내서로서 개항 후 인천의 초기 10년간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일본인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최초의 서적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일본이 얼마나 식민지 조선, 특히 인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저자에 관해 확실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1889년부터 인천에 들어와 3년간 생활하면서 인천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1894년 청일전쟁 이전 동아시아의 개항장 인천에 관한 자료라는 점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문적인 연구 조사기관은 아니지만 인천에 거주하던 일본인 지식인이 편찬함으로써 인천의 실상에 정통한 정보를 제공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개항된 인천에 10년 동안 거주한 400여 호의 일본인 2,700여 명에 관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만, 저자는 전체 목차를 설정하고 있지 않으며 서술방법도 장(章)과 절(節)을 구분하고 있지 않고 자신이 평소 기록하고 정리해둔 것을 나열식으로 전개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세밀하게 내용을 살펴보면, 인천의 호구와 언어, 물가(物價)에서 각 기관에 대한 소개 및 심지어는 그곳의 근무자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청일전쟁 전의 인천에서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전문 안내서라고 할만하다.
『인천사정』(1892)은 비록 일본인에 의해 간행된 것이기는 하지만, 개항기 인천에 관한 자료가 부족한 현실에서 그 자료적 의미는 적지 않다. 그러나 인천 발전의 주체가 인천 거주의 일본인으로 왜곡 이해될 가능성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