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삼국연대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 지식층들 사이에 논의된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연대를 통해 서구세력을 방비하자는 정치론이다. 동양삼국제휴론이라고도 한다. 한·중·일 삼국이 지역적, 문화적 공동체로서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등 서양의 직접적인 침략에 직면하면서 사회진화론과 결합하여 서양 백인종에 대항해야 한다는 인종적 연대론으로 발전하였다. 계몽주의 계열의 지식인층이 역사적 연원과 국가 간의 현실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의 아시아연대론 또는 동양평화론 등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
19세기 후반 동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았고,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전락되어갔다. 20세기 들어서도 서구 열강들은 아직 자신들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 대해 더욱 관심을 증대시켰다. 동양삼국연대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지식층들이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삼국의 연대를 통하여 서구세력의 침탈을 막아내자는 것으로, 동양 전국의 위기를 자각하면서 발생한 시국관이자 정치이론이었다. 즉 ‘동양삼국연대론’은 한 · 중 · 일 삼국이 문화적, 지리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서양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에 대항할 수 있는 정치적 · 경제적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당시의 지식층 일각에서는 동양 삼국이 문화적 언어 · 역사 · 독특한 감정 · 지리적 공간 등에서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을 공유하였다.
19세기 후반 삼국의 연대에 대한 지식층의 논의는 일본이 주장하고 있던 이른바 ‘아시아주의’나 ‘아시아연대론’ 등에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문화적 동질성과 ‘인종주의’에 입각하여 동양 삼국이 통합된 주체로서 서양 제국주의를 물리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들어 서양의 직접적인 침략(특히 러시아)에 직면하면서 지역적 · 문화적 공동체로서 동아시아의 연대 문제가 구체화되어 갔고, 백인종 러시아의 위협이 노골화되면서 ‘문화적 제휴론’은 ‘인종적 제휴론’의 성격을 띠며 한층 그 강도를 높여갔다. 이러한 인종적 연대 · 제휴론은 당시 밀어닥친 사회진화론과 결합하여 국가나 민족의 차이를 초월한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어 서양 백인종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발전하였다.
‘동양삼국연대(제휴)론’은 한국과 중국, 일본 삼국이 같은 동아시아에 위치하고, 동일한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으며, 같은 사상과 종교( 유교) 등 원초적 귀속감을 가진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에 서구 열강의 직접적인 침략에 대응해 동아시아 삼국의 국권보존과 평화공존을 위해 상호 제휴하자는 것이다.
20세기 초, 한국 지식층들은 서구사회의 침략으로부터 동아시아를 지키는 길은 황인종과 백인종의 대결구도 속에서 황인종인 한국과 중국, 일본 삼국의 연대와 상호협력을 통해야만이 실현 가능하다고 인식하였다. 이 시기 한국 지식층들의 국제정세 인식은 대부분 인종주의가 논리의 중점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역사적 연원과 국가 간의 현실적인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문화적 동질성과 인종주의에 입각하여 동양 삼국이 통합된 주체로서 서양의 제국주의를 물리칠 수 있다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이 일반화된 데에는 일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아시아주의’ · ‘아시아연대론’에 대한 인식 등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이해는 일본의 침략주의적 성격을 강조하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실적인 조건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것은 한국 지식인들이 일방적으로 일본이 선전하는 아시아연대론 또는 ‘동양평화론’ 등에 이용을 당했다는 측면만이 부각되어 지식층의 고뇌와 불안 등이 사장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지식층들이 인종주의를 중심으로 삼국연대를 주장하게 된 원인은 전근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종결되고,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차원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즉, 20세기에 들어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견고하게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계몽주의계열의 지식층들은 서양의 침략을 백인종의 침략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서양의 정치이론을 적용시키고자 한 지식층이라도 현실인식은 종래의 동양우위론적 틀 속에서 조화를 모색하는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화단사건 이후 서구 세계로부터 동아시아를 지키는 길은 황인종인 한국과 중국, 일본의 연대와 상호협력만이 가능했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계몽주의계열 지식층들은 당시 밀어닥친 ‘사회진화론’을 이론적 무기로 삼고 사회개혁과 국권회복을 꾀하고자 하였지만, 그것을 시대를 타개할 만한 이론으로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또한 이들은 인종주의에 기초한 ‘동양평화론’에 안주하면서 사회현실을 주도적으로 타파하고자 하는 의지가 미약하였다. 이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이들은 ‘삼국연대론’의 이상으로 생각한 ‘공존공영’의 희망과 동양평화의 꿈은 제국주의의 논리 앞에서 깨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