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한국친우회는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나타난 한국인의 독립 열망을 전파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조직된 친한 외국인 단체이다. 서재필이 톰킨스 목사 등과 함께 1919년 5월 16일에 결성하였다. 설립 취지문에 기독교와 인도적 차원의 민간 단체임을 밝혔지만 서재필은 한국독립을 위한 정치적 운동을 계획하였다. 1921년까지 미국 각지의 21개소와 영국과 프랑스 등 해외에 2개소가 조직되어 총 25,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한국의 실정을 국제적인 조직망을 통해 효과적으로 선전함으로써 한국의 독립을 위한 친한 여론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
정의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나타난 한국인의 독립열망을 전파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조직된 친한 외국인 단체.
설립목적
2. 한국민족이 지금까지 받아 온 일제의 학정과 부당한 대우가 가능한 더 이상 재발되지 않도록 미국민의 도덕적 영향력과 호의적인 조정을 다한다.
3. 한국에 관한 진실한 정보를 미국민들에게 알린다.
4. 세계 모든 민족과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영원한 평화를 증진시키며 하나님의 법이 온 세계에 수립되도록 돕는다.
연원 및 변천
서재필은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톰킨스(F.W.Tomkins) 목사·오버린대학 사회학과 교수 밀러(H.A.Miller)·International News Service 기자 베네딕트(G.Benedict) 등과 함께 한국친우회 결성에 적극 나섰다. 서재필이 톰킨스 목사와 함께 1919년 5월 2일필라델피아시티클럽에서 저명인사 22명을 초청하여, 발기모임을 가짐으로써 본격화되었다. 발기위원으로는 톰킨스 목사·서재필·베네딕트 기자가 선임되었다.
1919년 5월 15일 이들 발기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리딩(Reading)시 라자(Rajah)극장에서 대규모 대중집회를 개최한 후, 5월 16일필라델피아에서 정식 결성되었다. 취지문에 따르면 한국친우회는 극동에 있는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지원을 위해 미국민의 여론 조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지만, 이는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와 인도주의 측면에서 도덕적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지, 한·중·일의 정치적 문제에 간섭하고자 함이 아니라 하여 인도적 차원의 민간단체임을 밝혔다. 한국친우회의 결성은 3·1운동으로 한국의 실정을 국제적인 조직망을 통해 효과적으로 선전함으로써, 한국의 독립을 위한 친한여론을 일으키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1922년 2월 초 워싱턴회의 종결 이후 서재필이 모든 활동을 중지하기로 하면서, 한국친우회는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침체의 원인은 3·1운동을 이용한 선전활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내에서 선전재료로서의 가치가 줄어든 점, 워싱턴회의에서 미국정부가 현상유지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을 자극할 수 있는 한국문제에 무성의로 일관한 점, 워싱턴회의 이후 세계열강들의 질서가 일시적인 안정기로 돌아섬으로써, 친우회 활동이 더 이상 미국민의 호응을 얻기가 힘들어진 점 등이었다.
기능과 역할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신한민보』
- 『재미한인오십년사』(김원용, 캘리포니아, 1959)
- 「서재필의 독립운동 연구(1919~1922)」(홍선표,『한국독립운동사연구』7,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3)
- KOREA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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