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남인 성호학파(星湖學派)의 녹암계(鹿菴系) 학자들인 이승훈, 이벽(李檗), 정약전(丁若銓), 이가환(李家煥), 김원성(金源星) 등이 한문과 한글로 쓴 시(詩), 가사(歌辭), 산문 등을 모아서 〈잡고(雜稿)〉, 〈시고(詩稿)〉, 〈수의록(隨意錄)〉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편집한 책자로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을 전후한 시기 이승훈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사상과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문집.
편자가 명기되어 있지 않은 이 책의 발문(跋文)과 이승훈 후손들의 행적을 종합해볼 때, 이 책은 1801년 이승훈이 천주교를 전파하여 백성을 미혹(迷惑)시킨 죄로 처형당하고 대략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천주교에 대한 조정의 공식적인 박해가 다소 이완된 철종(哲宗, 재위 1849∼1863년) 무렵에 그의 아들 이신규(李身逵)가 부친의 유작(遺作) 등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 추정되며, 겉장에는 만천집(蔓川集)으로 그 안에는 만천유고(蔓川遺稿)로 제목이 붙여져 있다.
현재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에 보관중인 이 책은 원본이 아니라 구한말 전환국(典圜局)의 괘지에 전사(轉寫)된 필사본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17 x 25cm이며, 원래 김양선 목사가 수집한 것인데, 각 작품의 제목 밑에 작은 글씨로 부기된 주기(註記)가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곳이 몇 곳 있다.
〈잡고〉에 속한 〈농부가(農夫歌)〉를 비롯하여, 이벽과의 교유(交遊)나 경기 · 강원도 일대의 경치를 읊은 〈시고〉의 5언 또는 7언시, 대외사행(對外使行)이나 관직 생활에 참고가 되는 메모 형식의 〈수의록〉에 실린 글들은 이승훈의 작품으로 볼 가능성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