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텔 문서」는 프랑스 랑그르(Langres) 주 출신인 뮈텔이 조선 선교사로 임명된 1877년부터 1933년 1월 선종한 때까지 모두 57년 동안에 모은 문서이지만, 그중에서도 신부로 조선에 입국한 1880년∼1885년과 주교로 재입국한 1891년∼1933년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이 문서들을 교회내 • 외의 문서로 구분하여 연도별로 정리한 뒤 한지에 포장하여 100여 개의 종이상자에 보관하였다.
「뮈텔 문서」는 원래 서울교구청 안의 주교집무실에 보관되어 있다가 그의 사후에 개인 유품들과 함께 명동대성당 지하실로 옮겨져 보관됨으로써 한국전쟁 때에도 손상을 면할 수 있었다. 1964년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설립된 후 서울교구청에 있던 각종 문서와 자료들이 연구소로 이관되었다. 이관된 자료들은 이원순 교수가 1966년 여름부터 정리 작업을 맡았는데, 그 과정에서 ‘뮈텔 주교가 수집한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이원순 교수는 연구소의 최석우 소장 신부와 협의 끝에 이 자료를 「뮈텔 문서」라고 명명하고, 문서의 정리 작업과 활용방안을 논의하였다.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는 동양어(한글, 한문, 일본어)로 된 1,287건의 문서를 우선 분류한 후 1969년 이를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하였으며, 서양어(프랑스어, 라틴어,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로 된 12,164건의 문서들에 대해서도 1차 분류작업을 완료하였다. 동양어 문서 중에서는 한문 문서가 716건으로 가장 많은데, 대부분 구한말의 교안(敎案) 및 각종 사건들과 관련된 공한(公翰), 사한(私翰), 고목(告目), 공문서, 진정서, 호소문, 통문(通文) 등이다. 서양어 문서 중에는 프랑스어 문서가 9,518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주로 한국인 성직자들이 뮈텔 주교에게 써 보낸 라틴어로 된 연말보고서는 1890년대부터 나타나서 1910년 이후 그 숫자가 급격히 증가된다.
「뮈텔 문서」안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각 지역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보내온 서한 형식으로 된 각종 보고서이며, 그 다음으로 1866년의 한불수호조약, 1905년의 ‘을사늑약’ 등 외교문서와 구한말 각지 교안(敎案)자료 및 교안의 해결과 종교자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1899년 교민조약(敎民條約), 1901년 교민화의약정(敎民和議約定), 1904년 선교조약(宣敎條約) 관련 문서 외에도, 동학농민운동, 을미사변, 아관파천 및 일제 총독부의 지령, 포고문 등이 실린 「독립신문」, 「황성신문」들도 다수 있다.
「뮈텔 문서」는 1880년대에서 1920년대까지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에 기초가 되는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구한말부터 일제시대에 걸치는 한국 근현대사의 정치, 외교, 사회, 문화 등과 관련된 원사료(原史料)로서의 가치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이 문서들은 주교 자신이 직접 쓴 「뮈텔 주교 일기」와 비교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