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학교 ()

목차
천주교
단체
1907년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가 황해도 장연(長淵)에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1907년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가 황해도 장연(長淵)에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내용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서리에 위치했던 장연 천주교회(장연본당)에 1901년 제2대 본당 신부로 부임한 김문옥 신부가 교육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1907년 사립 초등교육 기관(소학교)인 경애학교를 설립했다.

경애학교는 ‘경애(敬愛)’라는 교명(校名)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을 공경[敬天]하고 이웃을 사랑하라[愛人].”는 복음정신을 그 설립이념으로 하였다. 설립 당시 학교는 본당 관할지역 내인 장연읍내 중심지 또는 읍내 유지인 오종석(吳宗錫, 알퐁소)의 집에 있었던 한문서당 자리에 위치했다가, 나중에 읍내 서리의 성당 옆으로 이전했다. 남학생 1개 반으로 시작하여 국한문과 산술, 지리, 체육 등을 가르쳤으며, 1908년 여학생반이 병설되었다. 김문옥 신부는 경애학교 외에도 두섭 공소에 정심학교(淨心學校), 장방골 공소에 장흥학교(長興學校), 문화에 월산학교(月山學校) 등을 설립하여 지역사회에 천주교를 널리 알리고 학생들에게 애향심과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정신을 심어주었다. 1911년 3월 학생 수는 남녀 각각 30명씩 모두 60명이었고, 학교 유지비도 개교 당시의 6배에 달하는 600원으로 증가되었다. 1911년 제3대 본당 신부로 김성학(金聖學, 알렉시오)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을 신축함으로써 구성당은 여학생들의 교육장소로 바뀌었다. 1916년 제4대 본당신부로 부임한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는 1921년 황해도내 천주교회 학교의 교사(敎師)와 전교회장(傳敎會長)을 양성하기 위해 해우양성회(海友養成會)를 결성하였고, 학생들의 교육 수준을 중학교 정도로 끌어올렸다. 1917년 장연 본당에 진출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본격적으로 여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면서 이후 여학생 교육은 장연본당 초대 분원장 최 골룸바 수녀를 비롯하여, 황수자 베네딕다·이일마(李一瑪, 데레사) 등 수녀들이 주로 담당했다. 1925년 6월 4일 김명제 신부는 4,000여 명의 군민 앞에서 악대를 동원한 대운동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여 지역 여론을 일으켜 7월 27일 보통학교 인가신청서를 제출, 6년제 인가를 받아냄으로써 경애학교는 4년제의 소학교에서 6년제의 보통학교로 승격하였다. 또한 1920년대 중반에 김 신부는 경애학교 유치부를 경애유치원으로 독립시켜 수녀들에게 운영을 일임했다. 1931년 경애학교의 재학생은 각 학년 1학급씩 모두 6학급에 338명이었고, 이때까지 졸업생 총수는 약 800명이었다. 김명제 신부는 경애학교 유지를 위해 송화군(松禾郡)의 황무지를 개간했고, 대규모의 양잠사업과 과수원 경영을 통해 주민들의 소득증대에도 기여하였다. 또 김 신부의 노력으로 황해도 각지에서 천주교 사제(司祭, 신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입교하여 본격적인 소신학교(小神學校) 교육을 받기 전에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고 교회의 분위기를 익히는 예비 소신학교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1942년부터 제8대 본당 신부로 봉직한 강주희(姜周熙, 방글라시오) 신부가 일제 말기와 해방 직후의 공산 치하에서도 학교를 유지해나가다가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하여 본당과 경애학교의 모든 교회재산과 시설들이 북한 정권에 징발됨으로써 그 기능이 정지되었다. 경애학교의 교사진으로는 학교 운영자금을 매월 정기적으로 조달하여 15년간 명예교장을 역임한 오종석이 있고, 1913년부터 7년간 초대 교감으로 봉직하면서 1920년 상해임정에 군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하다가 일제에 적발되어 해주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난 후에 교회 토지를 관리하는 농감(農監)이었던 장규섭(張奎燮, 바오로)이 있다. 이들 외에도 1920~1930년대에 임영익(林瑛益, 루도비코), 최광옥(崔光玉, 루도비코), 김상옥(金尙沃), 이진백(李振伯) 등이 남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했다. 경애학교 출신의 성직자로는 본교 교사였던 최광옥의 차남으로서, 1964년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창설하여 45년간 우리나라 천주교회사 연구의 기초를 확립했던 최석우(崔奭祐, 안드레아) 몬시뇰을 비롯하여 다수의 서울대교구 성직자들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대사전』1(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황해도천주교회사(黃海道天主敎會史)』(황해도천주교회사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집필자
원재연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