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간도교회는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천주교인들이 활동했던 간도 지역의 천주교조직이자 신앙공동체이다. 1897년 원산 본당 브레 신부의 순방으로 간도 지역의 천주교 조직이 건설되었으며, 이듬해 대교동 공소가 설정되었다. 1899년까지 각지에 공소와 교우촌, 그리고 가톨릭 교리와 한글을 가르치는 소규모 학교가 세워졌다. 이후 화룡서숙과 덕흥학교, 대립자 해성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1921년 조선 원산교구로 이관되었고, 1928년 연길지목구로 분리되었다. 간도교회는 북간도 지역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애국심을 고양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정의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천주교인들이 활동했던 간도 지역의 천주교조직. 신앙공동체.
연원 및 변천
1921년 3월 19일 교황청의 결정에 따라 간도 지역 조선인 천주교회의 사목관할권(司牧管轄權)이 정식으로 만주의 길림교구에서 조선의 원산교구로 이관되었다. 이때 교황청은 간도뿐만 아니라 위도 39도에서 48도를 넘어 송화강(松花江)과 흑룡강(黑龍江)의 지류 우수리강(烏蘇里江)어귀까지 즉 흑룡강성 의란(依蘭) 지역까지도 조선의 원산교구에 사목권을 위임하였다. 1928년 원산교구장 사우어(Bonifatius Sauer)주교는 정치적으로 중국에 속해있던 간도의 입지를 고려한 후 교황청에 건의하여 간도를 연길지목구(延吉知牧區)로, 의란을 독립된 포교지로 분리했다. 이로써 만주와 간도 지역의 사목재치권은 한국 천주교회로부터 분리되었다. 1928년까지 간도지역에는 기존의 3개 본당 외에 연길하시(延吉下市), 육도포(六道泡), 훈춘, 다조구(茶條溝), 돈화(敦化) 본당 등 5개 본당이 더 증설되어 모두 8개 본당, 12명의 선교사, 11,764명의 신자들이 있었다.
내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함경도 천주교회사』(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 『한국가톨릭대사전』1(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 「연길교구 천주교약사」(한흥렬, 『가톨릭청년』41, 193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