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태생으로, 1943년부터 김일성의 러시아 통역으로 활동하다가 입북하여 군의 고위직에서 6·25전쟁 사전 모의에 참여하였다.
소련동포 3세로, 1943년 당시 소련 비야츠크의 밀영에서 당시 소련 인민내무위원회(Narodnyy Komissariat Vnutrennikh Del ; NKVD, KGB의 전신) 산하 88여단에 소속되어 있던 김일성의 통역을 맡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해방 후 북한에 입국하여, 인민군 작전부국장으로 6·25 남침의 신호탄을 발사한 인물이다.
6·25 이후 숙청 시기에 소련으로 망명하였고, 이후 소련이 해체되던 시기에 6·25에 관한 상세한 과정을 증언하여 주목을 받았다. 반 김일성 체제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김일성의 소련 방문 직후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 간 극비리에 6·25 남침 작전계획이 작성되었으며, 소련군의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이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1991년 재소(在蘇) 교민신문, 고려일보에 회상록인 「피바다의 비화」를 연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