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관리제 ()

정치·법제
제도
해방 이후 북한에서 지배인 1인이 전권을 갖고 기업을 운영하던 최초의 공장관리체제.
이칭
이칭
지배인 유일관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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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해방 이후 북한에서 지배인 1인이 전권을 갖고 기업을 운영하던 최초의 공장관리체제.
내용

유일관리제는 1961년 ‘대안의 사업체계’가 도입되기까지 적용되었다. 유일관리제의 도입 시기에 관해서는 연구자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서동만에 따르면, 공식문헌에서 유일관리제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948년 12월호 『근로자』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논의는 1949년 초이며, 유일관리제가 정책으로 제출된 것은 1949년 11월 19일 ‘산업부문, 경제 및 직맹열성자대회’에서 행한 김일성의 연설이었다. 한편 이주철에 따르면 1947년부터 독립채산제가 실시되었고, 독립채산제와 유일관리제는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지배인의 역할과 명칭으로 볼 때 유일관리제가 해방 이후부터 실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일관리제에 대한 언급이 1949년 1월부터 『로동신문』에 본격적으로 언급된 점으로 본다면 1948년 이전부터 유일관리제가 제한적이나마 시행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1949년 이전의 방식이 유일관리제라기보다 유일관리제와 유사한 형태의 관리방법이라는 점에서, 이주철은 독립채산제의 실시와 더불어 유일관리제가 실시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관리방법이 제도로 정착되고, 1949년부터 『로동신문』에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1949년 11월부터를 유일관리제의 시작으로 본다.

북한의 유일관리제는 지배인의 주도적 권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배인 유일관리제는 그 제도상 원칙에 있어서 지배인이 기업관리, 운영의 모든 권한을 갖고 결과를 책임지게 하는 제도적 원칙을 견지한다. 그러나 기업소 내에서 기업운영에 관한 중요한 권한과 책임은 어디까지나 지배인 한 사람에게만 있었고, 권한부여의 반대급부로서 지배인에 대한 관리는 전적으로 국가의 몫이었다. 게다가 재정 문제나 인사권에 대해서도 지배인의 권한은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지배인은 기업관리 운영인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였다. 지배인의 역할은 원칙상 국가의 지시를 기업소 내에서 충실히 수행하는 것에 머무르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지배인은 국가의 역할을 대리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존재였지만 경제관리에 있어서 주체적 입장에 있었던 만큼 김일성은 지배인의 역할이 중요함을 빈번하게 강조했다. 지배인은 중간관리층으로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고리와도 같은 역할을 맡고 있었고, 경제관리의 효율성 문제에 있어서도 지배인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 상부에서는 끊임없는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와 함께 지배인 유일관리제에서는 생산자 대중의 기업관리 참여를 위한 조직체가 구성되어진 특징을 보인다. 생산협의회로 불린 이 조직은 생산관리의 문제들을 집체적으로 토의하여 창조적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생산협의회에서 검토된 방안들은 구체적으로 지배인들의 경제관리에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것으로 설명되어지는데, 이는 지배인들의 능력과 결부된 문제였다. 이는 북한체제 성립 이후 전문엘리트층의 부족으로 인한 경제관리에서 파생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기된 것이었다.

변천과 현황

해방 직후 북한에서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공업관리체계가 성립되기 이전의 기업은 지방인민위원회의 지도 아래 공장관리위원회에 의해 관리 운영되었다. 일종의 지방분권적인 공업관리조직은 1946년 8월 중요산업 국유화령으로 사회주의 국영공업의 창설과 함께 개조되었다. 그리고 12월에는 독립채산제 등의 국영기업 관리체계가 공식문헌에 등장하였다. 1948년에는 종래의 산업국을 산업성으로, 산업관리처를 산업국으로 각각 개조하여 과거의 국-처-기업이 성-국-기업 순이라는 체계로 개조되었다. 그리고 북한의 공업관리체계는 중요산업의 국유화와 중앙관리체계로 방향을 잡아 나갔다. 북한은 이와 같이 중요산업의 국유화와 국가통제의 계획경제 아래서 산업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공장관리체계는 소련의 유일관리제를 모방한 모델이라고 북한에서도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 북한의 공장관리체계가 ‘유일관리제’에 의거해 운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소련식 사회주의 모델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의 후진적인 물질적 조건들은 소련 모델의 즉각적인 모방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산업관리체계에 있어서 유일관리제와 독립채산제는 북한의 조건 속에서 곧바로 실행될 수 없었다. 유일관리제와 독립채산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특히 독립채산제는 생산단위의 재정적 자립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재정적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북한에서 유일관리제와 독립채산제가 공장관리체제로 통합되어 기본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는 것은 농업의 전면적 집단화와 공업화 착수 이후인 1961년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북한의 공장 및 노동 실태 분석』(차문석·김지형, 한국노동조합총연맹, 2008)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서동만, 선인, 2005)
『김일성저작집』2(김일성,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북한의 국영관리기업과 노동정책」(이주철,『史叢』46, 1997)
『朝鮮社會主義の硏究』(高瀨淨, 博文社, 1978)
집필자
문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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