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작단 ()

정치·법제
단체
1945년 7월 결성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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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5년 7월 결성된 단체.
설립목적

전쟁 막바지에 일본 점령지역이었던 북조선에 투입되어 점령지 평정 및 대민 선무공작을 담당케 할 목적으로 조직으로 조직되었다.

연원 및 변천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하던 세력 가운데 일본군의 공세로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에 소련 지역으로 피신한 이들로 구성된 88여단은 원래 당시 소련의 비밀경찰의 총수이자 스탈린의 오른 팔이었던 베리야의 지시에 의해 소련 비밀경찰 산하 조직으로 결성되었던 부대이다. 이에 동북항일연군교도려단 혹은 소련에서 명명한 88특별여단으로 불리운다.

소련은 1945년 독일이 패배하고 일본제국의 패망이 임박하자 동북항일연군교도려 혹은 88여단 내에 있던 조선인들로 ‘조선공작단(단장: 최용건)’을 결성케 하고 유사시 입북을 준비케 하였다. 이때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교도려단 조선공작단 정치군사 책임자였으며, 뒤에 소련군 소좌로 승진했다. 조선공작단 대원 가운데 일부는 1945년 8월 8일 소련군과 함께 ‘국내진공작전’에 참석했으며, 나머지 김일성을 포함한 일부 조선인들은 9월 18일 원산항을 통해 조국에 돌아왔다.

기능과 역할

88여단은 1930년대 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 속에서 소련과 국경을 인접한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을 소련 국경지대로 결집시켜 유사시 적 후방으로 침투시켜 도시 게릴라, 사보타지, 선전 선동 활동을 펴려는 목적으로 조직한 소규모 게릴라 군사 조직의 하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 부대의 주 훈련 내용도 낙하산 훈련, 도시게릴라전, 선전 선동 활동이었는데 이러한 여단급의 부대는 소련 국경선을 따라 서쪽으로는 핀란드부터 동쪽으로는 극동 브야츠크의 88여단에 이르기까지 백 수십여개의 여단이 구성되었었다고 한다. 주로 중국인과 한인으로 구성된 88여단은 종전이 임박하여 중국인들은 중국으로, 한인들은 조선으로 투입되는데 이 중 북조선으로 투입된 조직이 종전 막바지 구성된 조선공작대였다.

이 조선공작단이 바로 북한의 현대사를 만들어나가는 주역들로 김일성(金日成), 최용건(崔庸健), 김책(金策), 안길(安吉), 서철(徐哲), 김일(金一 ; 혹은 박덕산), 최현(崔賢) 등이다.

중국공산당 자료에 따르면 1944년 8월 현재 연해주에 있던 조선인 유격대원은 100명이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공작대는 소련이 유사시 혹은 전후 점령지에서의 점령 정책 및 대민 선무 공작을 위해 조직한 것으로, 전후 소련의 점령지에서는 전전에 소련 영토 내에서 조직한 해당 민족으로 구성된 특수여단의 구성원들에 의해 대체로 권력이 장악되었으며, 북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참고문헌

Special Tasks(Pavel Sudoplatov and Anatoli Sudoplatov with Jerrold L. & Leona P. Schecter, Warner Books, 1995)
집필자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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