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급만주 ()

조선급만주
조선급만주
근대사
문헌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을 개제하여 발행한 종합 잡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을 개제하여 발행한 종합 잡지.
개설

『조선과 만주』는 1908년 3월 창간된 『조선』이 1912년 1월(통권 47호)부터 개명되어 1941년 1월(통권 398호)까지 발간되었다. 『조선』으로부터 계산하면 34년간 이다. 1912년 6월(통권52호)부터 12월(통권 65호)까지 매월 1일과 15일에 발행된 것을 제외하면 월간지였다. 잡지의 편집은 『조선』 창간호부터 샤쿠오 슌죠〔釋尾春芿〕가 담당하였다. 그는 1909년 4월에 발행된 『조선』제3권 제2호부터 경영까지 책임졌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을 『조선과 만주』로 잡지명을 바꾼 가장 중요한 이유는, “조선은 이제 일본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만주는 여전히 청국 영역이다. 그러나 만주 일대는 일청.일러 양대전에서 수만 명의 우리 장졸(將卒)을 희생하며 쟁탈했던 당이다. 지금은 그 대가로 남만주 일대에서 경영 개척의 실권이 우리 손으로 돌아와……정치 경제상으로 만주와 조선은 이미 경계가 무너졌다.……(철교와 철도 개통으로) 조선과 만주의 경계는 철거되었다.……(신해혁명으로) 만주에서 우리 실력의 부식을 시급하게 재촉하지 않을 수 없다(통권26, 1911.12)”고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대륙팽창에 호응하고 이를 선도·계몽하기 위해 잡지 이름을 바꾼 것이다.

서지적 사항

처음에는 권-호 체제로 발행되다, 1910년 3월호인 제25호부터 통권 체제로 발행되었다. 국판형 크기에 100쪽 가량으로 발행되었으며, 가격은 『조선』 창간당시 20전, 1909년부터 25전, 1941년 폐간 때 60전이었다. 월 2회 발행될 때는 국배판이었으며, 2권 40전으로 판매하였다.

1909년 통감부의 통계에 따르면 24,000부를 발행하였는데, 경성에 7,000부, 조선의 다른 지역에 8,600부, 일본에 7,200부, 타이완에 840, 중국에 360부를 발송하였다. 1911년조선과 만주사의 안동현 지국과 만주지사, 1918년 봉천기국을 각각 설치하였으므로 더욱 발행부수가 늘어났을 것이다.

도쿄의 코세사(皓星社)에서 1998에 영인하여 국내외 주요 기관에 대부분 소장되어 있다.

창간호부터 폐간 때까지 주재자가 바뀌지 않은 조선의 유일한 잡지였으며, 일본 본토에서도 마스다 기치이(增田義一)의 『실업의 일본(實業之日本)』 뿐이었다.

내용

재경일본인 특권층과 조선인 귀족사회의 사치스러움과 방만함, 게으름, 특권의식을 비판하였다.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하층민을 배려하지 않는 총독부정책을 비판하는 논조도 자주 게재하여 총독부 권력에 협력적이었던 『조선의 실업(朝鮮之實業)』과 달랐다.

‘요보’라는 말을 써가면서 조선인이 야만스럽고 지저분하면서 음험한 민족이며, 파렴치하고 비굴한 민족이라며 멸시하고 규탄하는 글이 자주 게재되었다. 문명국 국민으로서의 행태에 어긋나는 조선 거주 일본인에 대해서도 반문명적 행위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문명인으로서의 일본인의 존재감과 사명감을 드러내며 영구통치 지역인 조선을 완전히 동화시켜 조선통치와 대륙경영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대륙으로 진출하여 세계를 경영하는 길만이 일본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므로 일본인을 조선과 만주, 중국에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하면 일본의 인구증가와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의의와 평가

샤쿠오 슌죠는 『조선과 만주』가 ‘조선의 문화를 개척’하였고, ‘조선과 만주 개척과 대륙진출의 급선봉’에서 활약하였다고 폐간사에 자평하였다.

일본 대륙침략의 안내자로서 『조선과 만주』는, 조선인이 열등한 민족이라는 시선으로 서슴없이 경멸의식을 드러내는 한편, 제국주의자로서의 우월의식을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였다.

참고문헌

「해제: 조선과 만주」(임성모, 『조선과 만주 총목차 인명색인』, 어문학사, 2007)
「일본어 잡지 ‘조선급만주’에 나타난 1910년대 경성」(윤소영, 『지방사와 지방문화』9-1, 2006)
「한말 일제하 샤쿠오(釋尾旭邦)의 내한활동과 조선인식」(최혜주, 『한국민족운동사연구』43, 2005)
「해제: 조선」(박양신, 『개화기 재한조선인 잡지자료집: 조선1』,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편, 2004)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신주백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