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산 자락에 흩어져 있는 신내동 · 상봉동 · 중화동 · 묵동의 전형적 농촌 마을주민들이 함께 정성을 바쳐 지내는 마을굿이다. 원래는 해를 걸러 도당굿을 했으나, 묵동이 갈라져 나간 후 최근 30여 년간은 신내동 · 상봉동 · 중화동이 번갈아 맡아 해마다 행하고 있다. 2005년 1월 10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봉화산은 높이 160m에 불과하지만 인근이 모두 평야이기에 봉화를 남산으로 보내는 봉수대가 있었고, 예로부터 신성시되던 곳이었다. 『세종실록』(세종 29년 3월 4일 병인)에 봉수대 상단에 가옥을 조성하여 병기(兵器)와 아침저녁으로 공급하는 물과 불을 담는 데 필요한 기물을 보관한다고 되어 있는데, 후대에 이것이 오늘날의 도당(당집)으로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당주무당인 면목동 최씨가 제13대라는 설이 있어 약 4백여 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봉화산도당굿은 매년 음력 3월 3일에 하는데, 진행순서는 거리부정, 주당물림, 앉은 부정, 불사할머니거리, 가망청배, 진적, 본향, 상산, 별상, 신장, 대감, 산제석, 창부, 군웅, 용신, 대잡이, 뒷전으로 되어 있다. 2005년의 도당굿에서는 진적에 앞서 유교식 제사를 모신 적이 있다.
먼저 거리부정을 친 후 당으로 들어가는데, 당 안에 모셔진 신은 산할머니 · 불사할머니 · 미륵할머니라고 부른다. 장삼에 고깔을 쓴 신상으로 옆에는 동자를 데리고 있다. 무녀는 당 안에 들어가 앉아 부정을 친 후 봉화산할머니를 모시는 불사굿을 한다. 당 안에서 청배한 후에 마당에 놓인 물동이를 타고 공수를 준다. 불사굿이 끝나면 나머지 굿은 도당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와 차려진 가설 굿청에서 한다.
봉화산도당굿에서는 군웅굿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머리 사실을 세우고 그것이 쓰러진 방향을 주시하는데, 특정 마을 방향으로 쓰러지면 그해 좋지 않다고 믿는다. 대는 참나무를 사용하여 굿청을 한 바퀴 돈 후에 서낭당에 놓는다. 뒷전을 하고 마친다.
봉화산에서는 음력 6월 초하룻날 소를 잡아 소치성을 드렸으나, 현재는 전승이 중단되고 도당굿만 하고 있다. 2000년봉화산도당제보존위원회가 결성되어 굿을 주관하는데, 당주무당, 당주악사 등이 중심이 된다. 굿은 신들린 무당이 하고, 악사는 피리 · 대금 · 해금을 담당한다.
당골무당은 당주라고 부르는데, 1984년 오토바이무녀(박어진, 당시 62세)에 의하면 강씨할머니, 이씨할머니, 오씨할머니, 한씨할머니, 김씨할머니, 방순녀(면목동 어머니)에 이어 본인이 제7대라고 하였다. 방순녀는 악사 최석길의 본처였고, 오토바이무녀는 작은집이었다. 오토바이무녀는 당시 방순녀의 신딸 강기순(제주도집)과 함께 당주를 맡고 있었는데, 강기순은 2000년 도당굿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고, 현재는 오세옥이 굿을 맡고 있다. 신위행은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어 현업에서 물러났다.
봉화산도당굿은 신들린 무당이 굿을 하고 있어 전형적인 우리 민간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