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정평(定平) 출신.
신대걸은 일찍이 일본 나라[奈良]의 정강중학교(正强中學校)에 입학한 후 교내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은 전쟁에서 반드시 패망한다.”며 학생조직을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펼쳤다.
한편, 일본인 학생들에게 한국독립의 당위성과 한국독립운동에 성원해줄 것을 역설하다가 1943년 3월 졸업식날 일경에게 피체되었다. 1944년 8월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나라소년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귀국 후에는 육군사관학교 5기로 졸업하고, 일선에 근무하다가 1959년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1961년 5ㆍ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정권의 거듭된 부름을 받았으나 바른 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평소 근검한 생활을 몸소 실천하여 주위의 신망을 받았다.
1986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