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곡성 출신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이던 1929년 6월에 김상환(金相奐)ㆍ김보섭(金普燮) 동료학생 20여 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회합하고 항일학생비밀결사인 광주고보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이 비밀결사는 광주지역의 중심적 항일학생결사였으나 회원 중 이반자가 생겨 1927년 3월 형식상 해체된 성진회(醒進會)를 계승하여 확대 개편된 독서회 중앙본부의 하부조직으로 결성된 것이다.
광주고보 독서회의 운영은 전 회원을 5개조로 나누고, 각각 조별로 연구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독서회 활동을 통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러나 1929년 11월 3일의 광주학생독립운동 시위 때에는 신병으로 인하여 참가하지 못하였다. 그 후 1929년 12월 4일에 독서회 운동 때문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고,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으며,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형이 확정되었다. 1945년 8·15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 잠시 참여하였다.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