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은 발족선언문에서 대학생들의 전국적 단결을 통한 “군부독재정권과 제국주의자”의 타도를 설립목적으로 선언하였다. 활동방향으로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외세 배격, 독재 종식, 평화통일에 기여, 민중과의 연대, 학원 자율화 등을 천명하였다.
1987년 7월 5일 고(故) 이한열(李韓烈)의 장례식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전대협 결성이 최초로 합의되었다. 같은 해 8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전국 95개 대학 4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기 전대협을 공식 발족하였다. 당시 전대협은 학생운동사상 최대의 조직으로 수립되었는데, 전국에 19개 지구를 두고 각 대학 총학생회장이 대의원이 되는 협의체였다. 1992년 ‘한총련 건설준비위원회’로 조직을 개편하여, 1993년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재발족하였다.
1987년 제1기부터 1991년 제5기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 후반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선도하였다.
1988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후보 김중기가 발표한「김일성대학 청년학생들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은 1980년대 후반 대학생들에 의한 통일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같은 해 5월 서울대 화학과 조성만의 투신자살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소위 ‘6·10투쟁’과 ‘8·15투쟁’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1988년 6월 10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2만여 명의 학생들이 ‘6·10민주화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가졌는데, 이는 대중적 통일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구국의 강철대오’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전대협 제3기는 전대협 사업의 전국화에 주력하는 한편, 울산현대 지원투쟁과 축전참가 투쟁 등을 이끌었다. 1990년 전대협 제4기는 5·18광주민주화운동 10주기를 맞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전대협 의장으로 선출하고, 광주에서 출범식을 열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 전대협의 수립과 활동은 당대 대학생들의 한국사회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고민과 실천의 결과물이었다. 실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전대협은 공정선거감시단 활동, 남북학생회담 시도, 임수경(林秀卿)의 평양축전 참가 등 민주·통일을 위한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정치 편향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당면한 사회문제에만 집중하여 사업을 전개했던 한계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변화된 시기에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학문과 생활이라는 목표를 함께 추구하는 학생 조직으로 발전을 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