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1월 2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했다. 1936년 대전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44년 일본 와세다대학 이공학부 채광야금과 공학사를 취득한 후, 경성대학 이공학부 전임강사(1946∼1947), 해사대학 교수(1947∼1948), 국산자동차주식회사 기술고문(1948∼1950)을 역임하였다. 이후 공군항공수리창장(1950∼1953)으로 재직하던 중 미국 유학을 떠나 1955년 미국 노트르담대학원 물리야금 전공 공학석사, 1958년 미국 미네소타대학원 화학야금 전공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 귀국하여 국산자동차주식회사 부사장(1959.7∼1961.1), 원자력연구소 소장(1962.4∼1966.2),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소장(1966.2∼1971.6), 경제과학심의회 위원(1968.12∼1971.6), 국무위원 과학기술처 장관(1971.6∼1978.12), 학술원 회원(1976.6), 한국과학재단 이사장(1977.5∼1980.8),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명예연구위원(1979.1∼1980.8), 한국과학원 원장(1980.5∼1980.8),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고문(1984.7∼1987.2), 유엔과학기술개발자문회의 위원(1988.1∼1992.4),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1991.5∼1993.5) 등의 직책을 두루 거쳤다.
금속공학자로서 금속공학 전반에 걸쳐 기초에서 응용, 개발연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였다. 개발도상국가들의 과학기술 개발은 해당 국가들의 공업화와 국가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소장 재직 당시 효율적 연구환경 조성과 해외인재 영입 등을 통해 국내 과학 기술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1971년 과학기술처 2대 장관으로 임명되어 7년 이상 재직하면서 대덕연구단지 건설을 계획·추진하는 등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개발도상국의 공업연구』,『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개발전략』1∼3부 등이 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제1회 한국공학기술상 대상,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일본 닛케이 아시아상 등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국립서울과학관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과학위인으로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