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한경직은 해방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다. 오산학교와 평양숭실대학에서 수학한 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 귀국한 후 평양과 신의주에서 활동을 하다가 월남하여 영락교회의 전신 베다니전도교회를 설립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기독교구국회의 회장, 홀트양자회와 세계선명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서북 기독교 세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교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한국 개신교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의
해방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생애
활동사항
한국전쟁 중인 1950년 7월 3일, 대전에서 기독교구국회를 출범하여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51년 8월 성경구락부를 개설하고, 11월 부산다비다모자원을 설립하였다. 1953년 1월영락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홀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및 세계선명회(현 월드비전) 이사장으로 추대되었다. 1954년 영락모자원을 설립하고, 숭실대학 재건 초대 학장이 되었다. 195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0회 총회장과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195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을 역임했다. 1958년에는 학교법인 영락학원 초대 이사장, 1967년 숭실대학 이사장직을 맡았다. 1969년 영락여자신학교를 설립했다. 1983년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총재, 1984년 남강문화재단 이사장, 1988년 군복음화운동후원회 회장, 1990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 명예회장 등의 직을 역임하며, 한국 기독교·문화·교육 등의 분야에 평생을 헌신했다.
한경직의 주요 저서로는 『건국과 기독교』, 『신자의 사회적 사명』, 『팔복』, 『민주국가의 정신적 기초』, 『한경직 목사 설교전집』, 『병상에서의 묵상』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국내 최대 개신교 교단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 장로회(장로교)’ 통합교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대표인물이고, 해방 후 서북 기독교 세력이 남한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개신교의 양적 성장에 크게 기여한 종교인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한경직의 생애와 사상 연구」(이혜정,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식』83, 2008)
- 「한경직의 기독교적 건국론과 복음화운동」(이혜정,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6)
- 『아름다운 빈손 한경직』(김수진, 홍성사, 2000)
- 『한경직의 생애와 설교 연구』(홍성범, 장로회신학대학대학원, 1999)
- 『한경직의 생애와 사상』(한승홍, 장로회신학대학 출판부,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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