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경북 출신으로,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을 하였고 해방 후 좌파 재일조선인 운동을 전개하였다. 1955년 재일 총련 결성시 의장에 취임하여 2001년 2월 사망할 때 까지 종신 의장직을 맡았다.
1907년 경북 경산 출신으로 1927년 도일(渡日), 1929년 니혼대학 사회과를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1931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 가입하였다. 1934년 터널공사의 쟁의에 참가하여 2년간 투옥된 바 있다. 해방 후 관동지방조선인회를 결성하는 등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고, 재일조선인연맹 결성에 참여하여 가나가와현 본부 위원장과 중앙본보 총국장을 역임했다. 1951년 ‘구월서방’을 설립하여 북한의 당선전부로부터 기증받은 출판물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듬해 조선문제연구소를 설립하여 이데올로그의 거점으로 활용해왔다. 일본공산당에 가입하였지만 조선인 주류파인 민대파(民對派)에 맞서 북한을 지지하는 비주류 민족파(民族派)로 활동하였고, 1955년에는 조련을 계승한 민전(재일조선민주통일전선)이 ‘자기비판’을 통해 총련으로 재결성되면서 의장직을 맡게 되었으며, 1967년부터 북한의 제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역임한 바 있다.
1972년 공화국 노력영웅 칭호와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고,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시에는 장의서열 4위의 위상을 가지고 참여한 바 있다.
북한에서 2중 노력영웅 칭호 및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