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출신지 미상. 최우집권기 나득황(羅得璜), 이경(李瓊), 최보후(崔甫侯) 등과 함께 선지사용별감(宣旨使用別監)으로 임명되어 각 도(道)에 파견되었으나 현지에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아서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최항(崔沆)이 최우(崔瑀)의 뒤를 이어 집권한 뒤 민심을 얻기 위해 이들을 파면하고 수탈 행위를 엄금했으나, 1252년(고종 39) 8월 최항이 다시 하공서 등을 선지사용별감으로 내보내 사복을 채웠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통분하고 한탄했다. 최우∼최항대 선지사용별감에 연이어 임명된 것으로 보아 그는 최씨무신정권의 심복이었으며 그들의 안정적인 지방통치 및 조세수취에 일익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