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출신지 미상. 최항정권기에 천문관측을 담당하던 사천대(司天臺)의 판사천대사(判司天臺事)로 있었다. 1250년(고종 37) 12월 갑인일에 달이 저성(氐星: 이십팔수의 셋째 별자리의 별들)을 범하였고, 을묘일에는 방성(房星: 이십팔수의 넷째 별자리의 별들)과 상상성(上相星)을 범하였다. 최윤단은 달이 방성과 상상성을 범한 형상은 왕에게 걱정이 있고 상상(上相)이 베임을 당하니, 난신(亂臣)이 동하여 신하가 왕을 대신할 징조라고 보고하였다.
당시 고종이 장차 몽고 사신을 마중하러 제포궁(梯浦宮)으로 가려 하였으므로 사천대에서는 왕의 행차를 정지하고 신변을 보살피려는 의도였다. 최항은 밀봉한 그 보고문을 보고 불쾌히 여겨 어사대(御史臺)를 사촉하여 사천대가 성변(星變)에 대하여 허망한 보고를 했다는 이유로 최윤단을 파직시켰다. 최씨무신정권시대에 언로(言路)가 막힌 상태에서 판사천대사 최윤단이 점(占)에 의거하여 임금에게 상주하여 덕을 닦아 재앙을 소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윤단이 파직당한 이후 일관의 아뢰는 것마저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