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단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판사천대사를 역임한 관리. 일관(日官).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판사천대사(判司天臺事)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후기 판사천대사를 역임한 관리. 일관(日官).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출신지 미상. 최항정권기에 천문관측을 담당하던 사천대(司天臺)의 판사천대사(判司天臺事)로 있었다. 1250년(고종 37) 12월 갑인일에 달이 저성(氐星: 이십팔수의 셋째 별자리의 별들)을 범하였고, 을묘일에는 방성(房星: 이십팔수의 넷째 별자리의 별들)과 상상성(上相星)을 범하였다. 최윤단은 달이 방성과 상상성을 범한 형상은 왕에게 걱정이 있고 상상(上相)이 베임을 당하니, 난신(亂臣)이 동하여 신하가 왕을 대신할 징조라고 보고하였다.

당시 고종이 장차 몽고 사신을 마중하러 제포궁(梯浦宮)으로 가려 하였으므로 사천대에서는 왕의 행차를 정지하고 신변을 보살피려는 의도였다. 최항은 밀봉한 그 보고문을 보고 불쾌히 여겨 어사대(御史臺)를 사촉하여 사천대가 성변(星變)에 대하여 허망한 보고를 했다는 이유로 최윤단을 파직시켰다. 최씨무신정권시대에 언로(言路)가 막힌 상태에서 판사천대사 최윤단이 점(占)에 의거하여 임금에게 상주하여 덕을 닦아 재앙을 소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윤단이 파직당한 이후 일관의 아뢰는 것마저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고려시대 일관에 관한 일고찰: 일관의 역할과 그 지위를 중심으로」(김창현, 『사학연구』45, 199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