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좌부승선, 우복야, 추밀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71년(원종 12)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올랐다. 같은 해 6월, 세자 왕심(王諶: 忠烈王)이 몽고에 볼모로 갈 때 행차를 호위하였다. 그해 10월에 몽고 황제가 세자의 혼인을 허락하였다는 소식을 가지고 고려로 돌아왔다. 그해 11월에 다시 몽고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신정을 축하하고 세자의 혼인을 허락한 것에 대하여 사례하였다. 아울러 김통정(金通精)을 수반으로 하는 제주도의 삼별초(三別抄) 무리가 장차 다시 육지로 나올 것이 염려되니 섬멸해주기를 청하였다. 한편, 몽고 중서성(中書省)에 글을 올려 고려에서 몽고로 도망친 고려인들을 모두 보내주기를 청원하였다.
충렬왕 때 왕의 총애를 잃어버린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제안공(齊安公) 왕숙(王淑)과 중찬(中贊) 김방경(金方慶), 이분희(李汾禧) 등 43명이 반역을 꾀하여 다시 강화도에 들어가려고 음모를 꾸민다고 모함하였다. 이 때문에 이창경은 국문을 받고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무죄로 풀려났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원간섭하의 고려정치사』(김당택, 일조각, 1998)
- 『임연·임연정권 연구』(신호철 외, 충북대학교 출판부,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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