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鎭州). 아버지는 무신집권자 임연(林衍)이고 큰형은 임유간(林惟幹)이며 작은형은 교정별감(敎定別監) 임유무(林惟茂)이다. 장인은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을 역임한 채인규(蔡仁揆)이다.
임씨무인정권(林氏武人政權)의 일족이다. 1270년(원종 11) 2월 임유인은 원종의 폐위와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의 옹립 사실을 알리러 원에 파견되었던 큰형 임유간의 집을 서방 삼번(書房三番)을 거느리고 호위하였다. 당시 둘째 형인 임유무는 고려무인정권 최후의 무신집정으로서 교정별감의 직책에 있었다. 임유인은 원종의 출륙환도(出陸還都, 開京還都) 명령을 거부하고 몽고에 다시 항전할 것을 공표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매형 홍문계(洪文系)와 직문하성사(直門下省事) 송송례(宋松禮)가 원종의 뜻을 받들고 동원한 삼별초 병력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이때 임유인은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여 사로잡힌 채 몽고 사신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임유인과 임유무의 제거는 100년 동안 지속된 고려무인정권의 몰락을 의미하며, 출륙환도를 단행한 고려 정부가 원나라에 복속되어 원간섭기(元干涉期) 치세에 놓이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