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268년(원종 9) 12월에서 이듬해 2월 사이 김준정권(金俊政權)을 붕괴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1269년(원종 11) 2월 9일(乙酉) 김준을 제거한 후에 권세가의 자제들에게 활과 화살을 가지고 궁궐 내에 들어와 지키게 하고 후벽장군(後壁將軍)이라 하였는데, 장군 김보의(金保宜)·임유무(林惟茂)·조윤번(趙允藩) 등과 함께 후벽장군이 되었다. 최종소의 장인 임연은 원 황궁에 직접 입조하라는 원나라 황제의 압박에 근심하다가 등창이 나서 1270년(원종 11) 정월 25일(乙未) 사망하였다.
임연 사후 임연의 둘째 아들 임유무가 교정별감(敎定別監)에 임명되었다. 임유무는 원나라 세력에 의지했던 원종의 출륙환도(出陸還都, 開京還都) 명령을 거부한 채 몽고에 대한 재항전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임유무는 원종에게 회유당해 포섭된 자신의 자부(姊夫) 홍문계(洪文系)와 송송례(宋松禮) 등에 의해서 제거되었다. 이때 임연의 사위이자 임유무의 매부였던 대장군 최종소는 사로잡혀 죽음을 당했다. 임유무정권을 지탱시켰던 최종소가 제거됨으로써 임씨무인정권은 종말을 고했으며 강도(江都) 정부는 출륙환도를 단행하여 개경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