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관룡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로 석가여래상의 대좌 윗면에 적혀진 기록을 통해 1629년(인조 7) 조각승 현진(玄眞)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창녕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로 이루어진 삼세불이다. 삼불 중 석가여래상 대좌 윗면 묵서에는 조각 승려, 불상 조성에 소임을 맡은 승려와 제작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1629년에 조성하기 시작하여 1630년에 완성하였으며 수화승 현진을 비롯하여 승일(勝一), 천민(天敏), 수영(守英), 탄행(坦行), 철의(哲義) 등이 제작에 동참하였다. 현진은 창녕 관룡사 불상 이외에도 1612년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2010년 지정), 1614년 구례 천은사 목조관음대제지보살좌상, 1626년 보은 법주사 대웅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2003년 지정), 1633년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2008년 지정) 등의 작품을 남겼다. 또한 불상 대좌 3좌는 불상 조성 기록만이 아니라 17세기 대좌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목조석가여래삼존상은 안정적인 신체비례, 넓적하고 볼살이 오른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표정, 단순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옷주름 표현 등이 특징이다. 중앙에 위치한 석가여래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변형 편단우견식 대의를 입었으며, 좌우 약사여래상과 아미타여래상은 한 손은 가슴위에 올리고 다른 손은 무릎 위에 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에 통견식 대의를 입었다. 이는 현진의 제자인 승일이 제작한 영광 불갑사 석가여래삼불상,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에도 보이는 특징으로 양식적 계승과 유파 형성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조각승 현진이 제작한 작품은 관룡사 불상을 비롯하여 1612년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612년 함양 상련대 목조관세음보살좌상, 1614년 구례 천은사 목조관음대세지보살좌상, 1626년 보은 법주사 대웅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1636년 청도 적천사 목조삼세불좌상, 1633년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1637년 성주 명적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9점이 있다. 이외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 극락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대구 북지장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청도 용천사 대웅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등도 현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7세기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조각승 현진에 의해 제작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으로 힘 있는 조각술과 천진한 인상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1610년대 현진의 작품들이 상반신이 길고 갸름한 얼굴을 했다면 1620년대 제작된 불상은 얼굴과 상반신의 길이가 짧아지는 변화를 보인다. 관룡사 불상 제작에서부터 조각승 승일과 작품 활동을 같이하는 점도 중요하며 이는 조선후기 유파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 불상은 1610년대에서 1620년대로 넘어오면서 변화되는 현진의 불상 양식과 그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불상으로, 불상 대좌에 조성발원문을 남긴 사례인 점도 중요하다.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현진의 작품세계와 활동, 조각승의 유파 관계, 원문 기입 방식에 있어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