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1216년(고종 3) 8월부터 1219년(고종 6) 정월까지 거란유종(契丹遺種: 패망한 大遼收國의 거란족 유민)이 고려를 침략하였다. 거란유종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1218년(고종 5) 7월에 편성된 고려군의 조직에서 차장군(借將軍) 정통보는 전군(前軍)을 지휘하는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정통보(鄭通寶)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인물로 정통보(鄭通輔)가 발견된다. 같은 시기에 고위 관직을 역임한 점이나 고려시대에 동일인이 같은 음의 다른 한자로 표기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두 사람은 동일인으로 보인다.
정통보(鄭通輔, 鄭通寶와 동일인)는 1221년(고종 8) 윤12월 지추밀원사 예부상서(知樞密院事 禮部尙書), 1222년(고종 9) 12월 추밀원사(樞密院使), 1223년(고종 10) 12월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 1225년(고종 12) 12월 판추밀원사 이부상서(判樞密院事 吏部尙書)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정통보는 초기에 무신으로서 거란유종의 침략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웠고, 이후 추밀원(樞密院)의 최고위직 등을 거치면서 최우정권(崔瑀政權)의 중요한 일원으로 활동했다. 아들로 정상(鄭相)이 있는데, 정상은 최우의 측근세력인 김희제(金希磾)의 사위였다.